[이슈프리즘] 위기의 ROTC를 살리는 법

입력 2024-03-04 17:54   수정 2024-03-06 07:59

나는 ROTC(학군장교) 출신이다. 1992년 2월 꽃샘추위 속에 2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거쳐 학군단에 입단했다. 2년차(4학년) 선배들의 혹독한 얼차려도 감수해야 했다. 3·4학년 학기 중엔 주 8시간 군사학 강의를 듣고 여름방학이면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한 달간 집체교육도 받았다. 그렇게 해서 1994년 3월 학군 32기로 임관했다. 131학군단 동기 46명을 포함해 모두 3615명이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이다.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장교로서 소대를 지휘 통솔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로버트 엘리엇)란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국가 방위를 책임진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당시 복무기간은 28개월. 병사(26개월)보다 2개월 길었지만 감내할 만했다. 월급도 많았다. 소위 1호봉 기본급은 32만7000원으로 병장 월급(1만1700원)의 28배였다. 입대 전 삼성물산에 취업하고 전역 후엔 장교 출신 특별 채용의 기회도 얻었다. 이번에 개인 병적까지 공개하기로 한 것은 군 초급간부의 70%를 차지하는 ROTC의 심각한 현실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ROTC 통합 임관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16년 만이다. 초급장교 확보에 비상이 걸린 최근 상황과 무관치 않다. ROTC 경쟁률은 2015년 4.8 대 1에서 2022년 2.4 대 1로 반토막 났다. 지난해에는 1.8 대 1로 곤두박질쳤다. 학군단 절반은 정원을 채우지 못해 사상 처음으로 추가 모집에 나섰다. 정원 43명인 131학군단에 올해 새로 입단한 후보생은 단 2명이다.

그나마 뽑힌 후보생들도 중도 포기하면서 임관자 수는 정원에 비해 수백 명 적은 실정이다. 올해 임관자는 2776명으로 작년보다 592명 줄었다. 131학군단에선 8명이 임관했다.

ROTC 지원율이 급감한 것은 복무기간은 긴데 처우는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육군 ROTC 복무기간은 그대로인 반면 병사는 18개월로 줄었다. 급여 차는 크게 좁혀졌다. 올해 소위 1호봉 기본급(187만원)은 병장 월급(내일준비지원금 포함 165만원)보다 22만원 많다.

지난달 국방부는 ROTC 지원을 늘리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후보생의 자긍심과 사명감을 고취하기 위해 해외 연수·공수훈련 기회 확대, 군사 교육체계 개선 등을 내걸었다. 단기복무장려금을 1200만원으로 300만원 올리고 학군생활지원금도 연간 64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 더 받겠다고 10개월 긴 ROTC를 선택할지 솔직히 의문이다. 핵심에서 벗어난 원인 분석으론 지원율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 ROTC중앙회가 대학 1~2학년생·고교 졸업생 7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들은 ROTC에 지원하지 않는 최대 이유로 긴 복무기간을 꼽았다.

국방부는 복무 기간 단축, 군가산점제 부활 등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윤 대통령도 대선 때인 2021년 1월 ROTC 복무 기간을 24개월로 단축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성차별 소지가 크게 줄어든 장교 가산점제 부활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성신·숙명·이화여대에는 학군단이 있고 다른 학군단들도 이미 여성 후보생을 뽑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임관식에서 “우수한 대학생과 미래세대가 망설임 없이 여러분의 뒤를 따르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3년 전 윤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ROTC 제도를 정상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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