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산업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설계사 조직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상품 개발이나 판매채널 혁신은 뒷전이다. 보험사 간 ‘설계사 쟁탈전’에 목을 매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출혈 경쟁이 부메랑이 돼 고객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당국이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점이나 본부급 단위 이직도 늘어나고 있다. 수십 명의 설계사가 한 번에 이동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부산의 GA 스카이블루에셋은 지난해 하반기 삼성생명 출신 지점장과 설계사 90여 명을 무더기로 영입했다. 앞서 대형 GA들은 과당 경쟁 예방을 위한 자율협약을 맺었는데, 스카이블루에셋이 이를 깨고 거액의 스카우트비를 지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율협약은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보험사와 GA들이 설계사 영입에 목을 매는 이유는 생명보험 산업의 성장 정체와 무관하지 않다. 업황이 정체된 상황에서 실적을 개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설계사 조직 확대이기 때문이다. 대면 영업 비중이 99%에 달하는 업계 특성상 설계사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매출과 직결된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들이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 노력보다는 설계사 채용과 영업조직 유지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경쟁 과열로 영업조직 운영 비용만 늘어나고 시장 효율성도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초 벌어진 단기납 종신보험 출혈 경쟁 역시 설계사 영입 전쟁에서 촉발됐다는 분석이다. 설계사들이 스카우트비를 받은 만큼 실적을 내기 위해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단기납 종신보험을 팔았다는 것이다. 대형 생보사 임원은 “설계사 스카우트 과당 경쟁을 해소하지 않는 한 제2의 단기납 종신보험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카우트 과당 경쟁이 수십 년간 반복돼온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GA·보험사 간 동일 규제 적용 △설계사 이직 이력·승환율 공개 △설계사 수수료 분할 지급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금융당국도 최근 보험업계 과당 경쟁 해소와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서형교/조미현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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