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거울 달고 즐긴 로마인, 공중화장실 천장에 거울 달린 한국인 [김동욱의 역사책 읽기]

입력 2024-03-07 06:00   수정 2024-03-07 06:39

거울은 오랫동안 존엄하고 높은 자를 상징하는 물품이었다.

동아시아 고대 사회의 청동거울부터 프랑스 절대 왕조의 대명사 루이 14세가 건설한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까지 거울은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했다.

거울을 소유하고, 거울로 꾸미는 데는 실제 적잖은 권력이 동원됐다. 루이 14세는 ‘거울의 방’을 만들 당시 거울의 생산과 판권을 쥐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거울 제작 장인들을 협박하고, 뇌물로 매수해 화려한 공간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거울은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초창기엔 단지 안에 물을 담아놓는 것에서 거울이 출발했다고 한다. 물에 비친 모습을 실내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실제 중국에서 최초로 발명된 거울도 물을 담는 청동단지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 지역에선 흑요석 같은 돌을 반질반질 닦아서 비친 상을 살펴보는 데서 거울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이런 형태의 거울은 기원전 60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고원에서 등장했다. 화산폭발의 부산물인 자연산 유리인 화산유리(volcanic glass)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금속 표면을 닦아서 거울로 쓰는 것은 기원전 4세기경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거울이라고 지칭할 때 연상되는 유리에 금속코팅을 한 형태의 거울은 1세기에 근동 지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로마 시대 박물학자 대(大) 플리니우스는 저서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금박 판을 활용한 거울을 언급할 정도였다.

로마 시대에는 거울의 사용이 널리 확산됐다. 호스티우스 콰드라라는 로마 시대의 기인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오목거울을 건물의 천장에 설치한 뒤 난교(亂交)의 향연을 극대화했다고까지 전해진다. ‘천장의 거울’이 섹스에 필수적인 욕망과 상상을 자극하기 위해 활용됐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선 유리판을 얇은 수은 아말감으로 코팅하는 방법이 등장했고, 12~13세기에 보급이 확산된다. 16세기가 되면 베네치아가 유리 제조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베네치아 유리 장인들은 유리판에 주석과 수은 합금을 얇게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해 반사 선명도를 높였다.

오늘날처럼 유리 표면을 화학적 공정에 의해 은으로 코팅하는 방법은 1835년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발명했다. 이 기술 덕에 거울은 대량생산 되게 됐고 호화 사치품에서 일상 생활용품으로 변해갔다.

거울은 오랫동안 귀한 귀중품이었던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물품으로도 인식됐다. 이는 각종 신화와 민담에도 반영됐다. ‘백설공주’ 속 왕비는 거울이 내뱉은 직설적인 답변을 듣고 백설공주를 죽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벨 수 있었던 것도 거울에 비친 메두사의 상을 보고 칼을 내리쳤기 때문이었다.


최근 개통한 수도권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천장이 유리로 설치돼 밤 시간대 칸 내부가 훤히 비쳐 보여 사회적 문제가 됐다. 지난달 개통한 포천화도고속도로 수동휴게소 화장실이 도마 위에 오른 것.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유리 천장을 설치했지만, 오히려 거울처럼 화장실 내부를 속속들이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이용객들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됐다.

거울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의 얼굴과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지, 타인이 나의 모습을 보라고 만든 것은 아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거울이 있어선 안 될 장소에 결과적으로 '큰 거울'이 들어선 것은 서둘러 시정해야 할듯하다.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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