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기의 개똥法학] 사법농단 의혹사건이 남긴 것

입력 2024-03-10 18:11   수정 2024-03-11 00:06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대법관, 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사법부 구성원에 대한 1심 판결이 최근 마무리됐다. 기소된 14명 중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죄 판결이 확정됐거나 전부 무죄가 선고돼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3명이 1심과 2심에서 선고받은 형도 모두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에 불과하다. 수년에 걸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과정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사법농단 의혹사건이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사건의 핵심인 직권남용죄의 구성 요건이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성립한다. 일반인은 물론 법률가조차 ‘직권’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남용’인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을 명확히 알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사건이 유죄로 인정될지 여부는 대법원에서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사건의 무죄율이 다른 사건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것도 이런 구성 요건의 불명확성, 비정형성에서 비롯된다. 나아가 직권남용죄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를 수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다분하다. 직권남용은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내부 징계의 대상에 가깝기 때문에 입법론적으로는 폐지하고 그 전이라도 직권남용죄에 대한 형사처벌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검찰 인지수사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사건 수사에 6개월에 걸쳐 40명가량의 특수부 검사를 투입했고, 주요 사건을 배당받은 두 개의 재판부는 약 5년에 걸쳐 사실상 이 사건만을 심리했다. 다른 사건의 처리는 그만큼 지연된 것이다.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피고인 대부분에게 무죄 판결이 선고된 것에 비춰 보면 한정된 사법인력의 효율적 분배라는 측면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이는 수십 명의 특수부 검사를 투입해 기소했음에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 인지수사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누구를, 어느 정도의 인력을 투입해 어떻게 수사할 것인지에 관한 검찰의 무제한적인 재량을 통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로버트 잭슨 전 미국 연방 검찰총장은 이런 말을 했다. “검사라는 직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사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가 사건을 고른다는 것은 곧 피고인을 고를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검사의 권한에 내포된 가장 큰 위험이다.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사건을 고르기보다 잡아넣고자 하는 사람을 고르게 된다는 점이다. 기득권과 지배층이 싫어하는 사람, 잘못된 정치적 태도를 지지하는 사람, 검사에게 혐오스럽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이 ‘진짜 범죄자’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인지수사의 위험성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사법농단 의혹사건이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통찰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검찰의 신속한 수사와 기소가 필요한 ‘진짜 범죄자’가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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