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피고인이 떵떵대며 의원 임기 채우는 나라

입력 2024-03-11 17:52   수정 2024-03-12 00:12

검찰이 ‘울산시장 하명 수사’와 관련,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조국혁신당 입당) 등을 기소한 것은 2020년 1월 29일이다. 1심 선고가 나온 것은 3년10개월 뒤인 지난해 11월 29일. 황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총 3년 징역형을 받았다. 2019년 대전지방경찰청장 재직 중 총선에 출마하려고 의원면직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듬해 경찰직을 유지한 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 사건을 맡았던 판사는 휴직 등으로 재판을 질질 끌었고, 황 의원은 의원 4년 임기를 다 채우게 됐다.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인턴 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2020년 1월 기소됐다. 피고인 신분으로 그해 4월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열린민주당)로 출마해 당선됐고,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는 최종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을 때까지 3년4개월간 배지를 달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있으면서 이해충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의원직을 개인 신변 보호막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것은 2020년 9월이다. 2년5개월을 질질 끌다가 1심 결과는 지난해 2월 나왔고, 9월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국민 기부금을 사적으로 쓴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된 윤 의원도 의원 임기를 다 채울 전망이다.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020년 10월 재판에 넘겨진 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의 1심 판결도 2년2개월 만에 나왔다.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지만 임기 90%를 채운 뒤 대법원 선고를 20일 앞두고 정의당 비례대표 후임자가 의석을 승계할 수 있도록 꼼수 사퇴하는 몰염치를 보였다. 허위 인턴을 등록하고 급여를 수령한 혐의로 기소된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1심 판결까지 2년이 넘었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은 1심 판결까지 3년2개월 걸렸다. 용인시장 때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된 정찬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3년 넘게 의원직을 유지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1심 재판이 30개월 넘게 진행되고 있다.

사법부의 재판 지연은 국회의원에게 유난히 심하다. 형사 공판 사건 1심 평균 처리 기간이 일반인에 비해 5배에 가깝다. 의원들의 의도적인 재판 불출석 등 원인도 있지만, 재판부의 정치권 눈치 보기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 지연도 심각하다. 선거법엔 공소 제기 1년 이내에 판결을 확정하도록 돼 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재판 지연으로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은 36개월,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은 24개월 동안 의원직을 유지했다. 21대 국회의원 중 기소됐으나 재판이 끝나지 않아 의원직을 유지하는 의원은 27명에 달한다. 구속돼도 최종 판결 때까지 급여를 꼬박꼬박 받는데, 이렇게 지급된 혈세가 35억원 넘는다.

22대 국회에선 더 이상 자격 없는 의원들이 선량 행세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암울하다. 2심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전 장관은 당명에 사람 이름을 넣을 수 없자 ‘조국(祖國)’을 꼼수로 넣은 당을 만들었다. 피고인인 황운하 의원은 민주당에서 여기로 옮겨와 비례대표 출마 가능성이 있다. 구속된 송영길 전 의원은 이름도 희한한 ‘소나무당’을 창당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을 국회에 입성시켜 입법 활동을 뒷받침하고, 소외계층의 정치 참여를 증진한다는 비례대표제는 이렇게 형해화되고 있다.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은 해임 징계를 받고 피고인 신분임에도 영입 인재로 둔갑돼 민주당에 들어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7개 사건에 10개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아무리 공천이 아사리판이라고 해도 기소되면 후보에서 배제되는 게 관례인데 이번엔 이런 기초적인 상식조차 무너졌다. 이들의 ‘검찰 독재정권 청산’은 의원직을 ‘방탄’으로 삼겠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할 피의자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떵떵대며 의원 4년 임기를 채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 몫은 온전히 ‘조희대 사법부’에 달렸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평범한 법언(法諺)은 이제 듣기 지겨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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