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병원 9곳서 퇴짜…두살배기 끝내 숨졌다

입력 2024-03-31 18:36   수정 2024-04-08 16:09


충북 보은에서 물에 빠졌다가 구조된 두 살배기 아기가 대형 대학병원 여러 곳에서 이송을 거부당한 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건당국은 전공의 집단 사직 탓에 생긴 의료 공백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의료계 안팎에선 무너져가는 열악한 지역의료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치료 가능한 병상 없다”
3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30분께 보은에서 생후 33개월 된 A양이 주택 옆 1m 깊이 도랑에 빠지는 익수 사고를 당한 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10분 만에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아버지에게 구조된 A양을 응급 조치한 뒤 오후 4시49분 인근 B병원으로 이송했다. 구급대 도착 당시 A양은 맥박과 호흡, 동공 반응이 없었다. 심전도 검사에서도 심장이 뛰지 않는 무수축 상태로 확인됐다.

B병원에서 심폐소생술과 약물 치료 등을 받던 도중 A양은 오후 6시7분께 맥박이 돌아왔다. 의식은 계속 없었다. B병원 의료진은 A양이 자발적순환회복(ROSC)에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추가 치료를 위해 119구급상환관리센터와 함께 대형 대학병원 이송을 시도했다. ROSC는 심폐소생술을 받은 심정지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면서 혈액이 도는 상태다.

충북, 충남, 대전, 세종, 경기에 있는 9개 의료기관에 보낼 수 있는지를 확인했으나 A양을 받을 수 있다고 답한 병원은 없었다. “치료 가능한 병상 등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사이 A양은 오후 7시1분께 다시 심장이 멈췄고 39분 뒤 B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오후 7시29분께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A양을 받을 수 있다고 회신했지만 생명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공백 사태로 전원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며 “보은에서 40분 거리인 우리 병원으로 옮겨오면 오히려 환자 상태가 더 악화할 가능성 때문에 전원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상황 조사 나서
정부는 즉각 조사에 나섰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조사분석팀, 즉각대응팀 등을 꾸리고 환자 피해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복지부는 B병원에 도착한 뒤 A양의 상태, A양의 전원을 요청받은 의료기관의 당시 여건 등을 조사하고 있다. 당시 A양이 전원할 수 있을 정도로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었는지도 파악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엇갈린다. 일각에선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불거진 의료 공백 탓에 응급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응급의료포털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사고 지역 인근에 있는 대전 충남대병원은 소아과 의료진이 없어 토·일요일 진료를 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 병원은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인력 상황에 맞춰 응급실 병상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전성모병원도 휴일인 30일부터 소아청소년과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안내했다.
“평소에도 소아중환자 갈 곳 없어”
의료계에선 소아 중환자들은 의사 집단행동 이전에도 갈 곳이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아과 의사가 많지 않은 데다 병원들이 ‘돈 되지 않는 분야’ 투자를 꺼려 고사 상태에 놓였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 대형 대학병원 중 소아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13곳에 불과하다. 사고 인근 지역인 충청권 의료기관 중엔 충남대병원뿐이다.

충북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중환자 병상은 특성상 누군가 숨지거나 호전돼 이동해야 병상이 나온다”며 “지역 내에서 소아 중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상은 평소에도 많지 않았다”고 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와 연결 짓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취지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는 환아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 명확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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