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유럽 국가의 유명 정치 유튜버 A, B, C가 각각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친러시아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선거 직전 이들은 “친미 후보 측에서 우리를 살해하려고 한다”며 신변의 위협을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대선 전날 A, B는 사망하고 C는 실종됐다. 그 결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선거에서 친러시아 후보가 몰표를 받아 당선됐다. 경찰이 나중에 조사한 결과 A, B, C는 모두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가상 유튜버였다.한 국가의 대선판이 농락당한 이 전대미문의 사례는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 2022년 KAIST의 ‘미래전략 보고서’에서 상상한 미래 인공지능(AI) 사회의 한 에피소드다. ‘상상하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올해처럼 한국을 비롯해 세계 76개국에서 42억 명이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엔 더욱 그렇다.
다른 나라도 골치를 썩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만에선 1월 대선에서 개표 조작이 있었다는 가짜 뉴스 동영상이 퍼져 각 지방검찰청의 AI 전담 검사들이 수사에 나섰다. 올해 총선을 앞둔 영국에서는 지난해 10월 제1야당인 노동당 대표가 직원에게 폭언하는 딥페이크 음성 파일이 SNS에 퍼졌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AI를 활용한 중국과 북한의 선거 개입이다. 중국과 북한의 해커들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중국과 연계된 상당수 가짜 SNS 계정이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격 글을 유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도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11월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중국 업체가 웹사이트 38개를 개설해 친중·반미 가짜뉴스 등을 무단으로 퍼뜨린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AI 기술로 무장한 외부 세력의 선거 개입을 막을 특단의 대책을 지금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중국에 ‘셰셰(謝謝·고맙다)’만 해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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