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베이비시터·75세 오너 셰프…싱가포르에서 '은퇴 절벽'은 없다

입력 2024-04-03 18:36   수정 2024-04-11 16:55


“파트타임으로 아이를 돌봐주는 게 제 일이죠. 최근엔 커뮤니티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무릎 재활을 위해 시작한 태권도는 벌써 2단까지 땄습니다. 100세가 돼도 침대에 누워 지낼 생각은 없습니다.”

싱가포르 부킷티마의 한 카페에서 지난달 만난 린 서 씨(80)의 말이다. 이탈리아계 기업에서 일한 그는 은퇴 후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퇴행성 관절염이 심했다. 인공관절수술 대신 근육량을 늘리려고 태권도를 배웠고 4개월 만에 스쿼트를 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됐다. 서씨는 20년 뒤 100세가 돼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일과 취미활동을 하며 살 것이라고 했다.
“노동으로 사회 접촉 늘리는 게 장수 비결”

한국만큼이나 고령화 속도가 빠른 싱가포르의 100세 시대 대책은 ‘노동’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60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면 임금의 최대 8%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노인 고용 크레디트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 덕분에 65~69세 고령자 고용률은 48.3%에 이른다. 은퇴 후에도 절반가량이 계속 일한다는 의미다. 실제 음식점 주유소 등에서 노인 직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2030년까지 법정 정년퇴직 연령을 63세→65세, 법정 재고용 연령을 68세→70세로 연장한다.

싱가포르 정부가 파격적인 정년연장 정책을 펴는 것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고 있어서다. 싱가포르의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2020년 70%에서 2050년 56%로 줄어들 전망이다. 찬흐엉치 싱가포르 외교부 대사는 “고령화사회에 대비하려면 고령층의 재정적 안정성을 보장하고 사회적 접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하면 인센티브 제공
건강하고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국민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앱 ‘헬시(Healthy)365’와 연계해 주기적인 건강관리를 유도한다. 일례로 앱을 활용해 무료 건강계획을 상담하면 20싱가포르달러 상당의 포인트를 제공한다. 2022년 미국 국립수면재단의 연구 결과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수면이 부족한 국가라는 문제가 지적되자 7시간 이상 잠을 자는 ‘수면 챌린지’를 진행하기도 했다.

공원 접근성을 높여 운동을 일상화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했다. 부산 크기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는 약 350개의 공원이 있다. 공원과 공원을 잇는 360㎞ 길이의 ‘파크커넥터’는 싱가포르 내 주거·상업·녹지를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한다.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은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는 집에서 산다.

건강관리 사업 덕분에 싱가포르 국민의 건강은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싱가포르 운동 인구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싱가포르 전체 인구 중 76.4%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만큼의 신체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58.3%에서 지난해 47.9%로 줄어든 한국과 대조적이다.
‘설계된’ 지구촌 장수국가
노인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펴고 있다. 2015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파이어니어 패키지’를 도입해 8~10싱가포르달러 내에서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청년층에서 반응이 좋자 혜택 대상을 55세 이상으로 확장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지구촌 장수지역을 일컫는 ‘블루존’ 여섯 번째 지역으로 선정됐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일본 오키나와 등에 이어 15년 만에 추가된 것이다. 다만 싱가포르는 전통 생활방식으로 장수사회를 이룬 다른 곳과는 달리 정부 정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한 심포지엄에서 옹예쿵 싱가포르 보건부 장관은 “싱가포르는 건강한 습관이 이미 내재돼 있는 다른 블루존과는 확연히 다른 ‘설계된’ 블루존”이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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