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공짜 재건축 시대는 갔다

입력 2024-04-04 17:56   수정 2024-04-05 00:17

“쥐약 입고됐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근처 약국에 붙은 문구다. 준공 50여 년이 가까워진 낡은 아파트에 쥐가 자꾸 출몰해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후한 구축 단지들의 처참한 속사정은 비슷하다.

수도에선 빨래도 하지 못할 정도의 녹물이 나오고 정전도 잦다. 낡은 배수관은 곳곳에서 터지거나 갈라져 아랫집 누수가 빈번하고 외벽과 옥상에는 빗물이 스며든다. 주차난은 밤잠을 설치게 한다. 한 단지에선 몇 년 전 화재가 났을 때 겹겹이 주차된 차들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찬밥 신세 된 재건축
집코노미 유튜브 채널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아파트를 다닌다. 직접 취재한 노후 아파트의 슬럼화는 꽤 심각했다. 많은 단지가 재건축에 들어갔지만 멈춰선 곳이 대부분이다. 정부가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안전진단 문턱을 없애주고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데도 현장의 반응은 딴판이다. 과거엔 재건축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반포, 잠실, 개포 등에서 10평대 저층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 추가 분담금 없이 더 큰 평수의 아파트로 갈아탈 수 있었다. 일반 분양 수입에 따른 환급금까지 챙겼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부담금 대상에서도 빠져나갔다.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고금리와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공사비가 폭등하면서 조합원이 감당해야 할 추가 분담금은 막대해졌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재건축·재개발 평균 공사비는 3.3㎡당 687만5000원으로 2020년 대비 43.1% 뛰었다. 조합원 부담을 줄이려면 일반 분양가를 높여야 하지만, 요즘 재건축 단지들은 용적률이 150~200%에 달하는 중층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일반 분양분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사업성 높일 방안 필요
대치동 은마와 압구정 현대 같은 강남의 대표 아파트뿐 아니라 1기 신도시도 사업성이 좋지 않다. 서울에서 노후한 아파트가 가장 많은 노원구는 분담금 여파로 재건축 추진이 사실상 멈췄다. 서울시가 과거 35층으로 묶여 있던 규제를 풀어줘 초고층 건설이 가능해졌는데도 조합이 먼저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재건축의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주고 있지만 기부채납(공공기여) 조건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압구정 3구역 등은 기부채납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인기 재건축 단지는 강남 3구에 몰려 있지만, 강남 3구는 규제지역으로 묶여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다. 후분양을 한다고 해도 사업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 비용 부담이 크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같이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를 없애고, 용적률 체계를 유연하게 손보는 것도 필요하다. 공사비가 제대로 책정되고 있는지 검증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재건축이 오랫동안 휘청이면 그 여파는 일파만파 번질 것이다. 당장 도심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뿐 아니라 집값 폭등, 도시 슬럼화, 나아가 내수 경기 침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무엇이 가장 실효성 있는지 판단해야 할 때다. 녹물 아파트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은 무슨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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