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패해줘서 고마워요

입력 2024-04-04 18:50   수정 2024-04-05 00:03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실패가 싫다. 그러나 그동안 화폐 수요 감소에 대응해 신사업을 발굴하려고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해준 선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유명 프로듀서 릭 루빈은 “실패는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라고 했는데, 한국조폐공사는 앞선 실패에서 사업 전환의 길을 찾을 것이다.

첫 번째는 수출기업으로의 전환이다. 과거 은행권과 주화를 중심으로 페루 등 16개국에 연간 4100만달러까지 수출(2013년 기준)하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제품의 부가가치가 낮은 탓에 적자를 봐 사업을 접은 적이 있다. 앞선 경험을 거울삼아 우즈베키스탄 자회사에서 현지 생산하는 면 펄프와 국내에서 제조하는 특수잉크, 안료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발굴하고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 등 해외로 최첨단 모바일 신분증 수출을 확대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기업으로의 전환이다. 실물 화폐와 신분증 제조에서 확보한 위·변조 방지 기술이 디지털 보안 기술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수년 전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선도적으로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 운전면허증과 전국 81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사랑 상품권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으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나지 않고 시장마저 정체되는 한계를 맞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와 전문 인력 등 ICT 기반을 바탕으로 지역사랑 상품권을 정책 수당 지급 채널로 발전시키고, 물가 안정에 기여한 착한가게에 할인율 우대 등 정책 수요와 연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역사랑 상품권과 전통시장 중심의 온누리 상품권을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높임으로써 소상공인 지원 정책에서도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은 문화기업으로의 전환이다. 주화와 훈장 제조 기술을 활용해 과감히 추진한 귀금속 소재의 불리온 메달 사업에서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관리 부실 때문에 큰 손실이 났고, 침체했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디자인과 제조 경험, 글로벌 유통 채널 확보라는 자산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K예술형 주화(국가 상징물을 금, 은 등 귀금속 소재로 발행하는 법정 주화) 사업을 역점을 두어 준비 중이다.

실패는 성공의 기반이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가 있었기에 조폐공사는 제조기업에서 수출기업, ICT 전문기업, 문화기업으로의 전환을 야심 차게 진행할 수 있다. 나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실패할 준비가 돼 있다. 도전하는 조폐공사를 만들기 위해 1300여 임직원 한 분 한 분과 소통하는 마음으로 노력할 것이다. 두려움 없는 문화가 꽃처럼 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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