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대비 '30년 도시 프로젝트'…늙어가던 가고시마 상권도 부활

입력 2024-04-05 18:37   수정 2024-04-15 19:50

지난 2월 말 일본 가고시마시 남부 우스키 상점가의 라멘 가게 긴보시 앞에는 평일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우스키 상점가는 시내 중심가나 관광지가 아니라 평범한 주택가의 흔한 상점가다. 코로나19 이후 비싼 임차료 때문에 가고시마 중심부를 떠난 라멘 가게들이 모여들면서 ‘라멘 격전지’가 됐다. 긴보시도 그중 하나다. 아리무라 미유키 긴보시라멘 사장은 “처음 이전한 5년 전보다 손님과 매출이 3배 늘었다”고 말했다. 가고시마의 라멘 가게들이 우스키에 모여든 건 우연이 아니다. 평균수명 연장과 인구 감소로 상권 인구가 고령자 중심으로 변할 것을 내다본 우스키상점가진흥회가 30여 년에 걸쳐 상점가를 개조한 결과다.

매일 조금씩 장을 보는 일본인들은 집 근처 상점가 의존도가 높다. 2022년 기준 도쿄에만 2374곳의 상점가가 있다. 일본의 상점가도 인구 감소 여파로 위기를 맞고 있다.


‘매뉴얼의 나라’ 일본에서 정부가 쇠락하는 상점가를 되살리는 매뉴얼까지 내놓은 이유다. 중소기업청은 2017년부터 ‘상점가의 미래상을 생각한다’라는 매뉴얼을 매년 발간한다. 매뉴얼의 모델이 바로 우스키 상점가다. 1992년 3개로 흩어져 있던 상점가를 우스키상점가진흥회로 통합하면서 상권 개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통합을 주도한 가와이 다쓰시 우스키상점가진흥회 이사장(71)은 1980년대 후반 신도시 개발로 이 지역에 유입된 인구가 고령화하면서 위기가 찾아올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2010년 2만615명이던 상점가 반경 1㎞ 이내 인구는 2050년 1만7197명으로 17%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3715명에서 6951명으로 8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권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고령자 비율은 18%에서 40%로 높아지는 변화에 맞춰 가게 구성과 서비스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못 살아남는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다.

우스키 상점가는 교통의 요지에다 가고시마대 의대가 자리잡은 지역이라는 강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아이 키우기 좋고, 고령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마을로 특성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중소기업청 상점가 부활 매뉴얼의 핵심은 ‘PDCA 사이클’이다. 사업을 ‘계획(Plan)-실행(Do)-평가(Check)-개선(Action)’의 4단계로 나눠 개선하는 방식이다. 원래 아이디어를 개량하는 연상법이지만 가와이 이사장은 이를 상점가 개조에 응용했다. 평가항목 81개를 모두 직접 만들었다.

계획(Plan) 단계는 현황과 장래 예측을 토대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운다. 우스키 상점가의 목표는 ‘빈 가게를 줄여 상점가 전체 매출을 늘린다’로 잡았다. 실행(Do) 단계는 계획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고, 평가(Check)를 거쳐 계획대로 되지 않은 부분을 개선(Action)한다.

우스키 상점가는 2006년 이후 매년 PDCA 사이클의 결과 보고서를 펴낸다. 우스키 상점가가 콤팩트하지만 탄탄한 내실을 갖춰가는 모습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2004년 우스키 상점가는 1만4000㎡의 점포 면적에 46개의 가게가 있는 상권이었다. 209명의 종업원이 21억6100만엔(약 19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 우스키 상점가의 종업원과 매출은 111명과 8억5000만엔까지 급감했다. 점포도 7000㎡, 34곳으로 쪼그라들었다. 2022년 우스키 상점가의 종업원과 매출은 각각 151명과 22억3500만엔으로 회복됐다. 상점가 규모도 7700㎡의 점포 면적에 36개의 가게로 안정됐다.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이란 목표도 달성했다. 초등학교 3곳, 어린이집 6곳, 방과후 교실 4곳이 모였다. 슈퍼마켓이 7곳이어서 장 보기도 편하다. 지역 주민인 도이 신이치는 “집 근처에 공원만 4개인 데다 철도, 노면전차, 버스까지 공공 교통이 편리해 딸이 중·고교에 진학해도 통학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14개의 병원과 13개의 약국, 17개의 노인요양원이 있는 우스키는 노인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2004년 2만1426명이던 인구는 2022년 2만3212명으로 늘었다. 2020년 24.6%이던 고령화율이 2023년 24%로 처음 낮아지는 기적도 썼다.

가고시마=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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