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 식단·운동 부족에도 장수…'나가노 패러독스'의 비결은 취업률

입력 2024-04-05 18:34   수정 2024-04-15 19:47

5일 일본 나가노시 중심가 오모테산도 센트럴스퀘어의 놀이터 조성 현장. 조경 전문 건설회사인 린교가사하라의 나가하라 히데키 과장보좌는 능숙하게 포크레인을 조작했다. 그의 나이는 70세. 올해로 정년을 맞았지만 회사 요청으로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경비 전문 회사인 젠닛케이서비스나가노에서 일하는 유자와 지아키 씨는 올해 81세다. 종일 서서 공사 현장의 교통 유도를 담당하는 일이지만 젊은 직원과 똑같이 풀타임으로 근무한다. 전체 직원이 230명인 이 회사는 60세 이상 고령자 18명을 고용하고 있다. 70세 이상도 6명이다. 린교가사하라와 젠닛케이의 정년은 70세로 일본의 법적 정년인 65세보다 5년 길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사실상 정년이 없다.

나가노현은 일본에서 고령자 취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18년 나가노의 65세 이상 고령자 취업률은 30.4%였다. 젠닛케이의 70세 이상 근로자 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전원이 “대부분이 건강 유지 차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 정중앙의 내륙지방인 나가노현은 기묘한 동네다. 소금과 설탕 섭취량이 일본의 4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위다. 눈이 많은 겨울을 보존식품으로 버티기 때문이다. 된장 생산량과 소비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라는 점도 소금 섭취량이 많은 이유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나가노는 미국 못지않은 자동차 문화권이어서 운동량도 부족한 편이다.

이처럼 단명할 요소를 고루 갖췄지만 나가노는 일본에서 평균 수명과 건강 수명이 가장 긴 ‘건강·장수현’이다. 소금 섭취량이 많은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같은 북부 지방의 평균 수명이 꼴찌를 다투는 것과 대조적이다.

나가노도 1970년대 초반까지는 장수 지역이 아니었다. 1965년 여성의 평균 수명은 26위였다. 1975년부터 남녀 모두 일본 평균을 웃돌기 시작하더니 1990년 이후 1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2020년 말 나가노의 남성과 여성 평균 수명은 82.68세와 88.23세로 일본 평균보다 각각 0.83세, 1.28세 더 길다.

단명하기 쉬운 생활습관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나가노 패러독스’는 일본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2014년 나가노현이 의사 등 전문가팀에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건강·장수현 나가노’는 나가노 사람 특유의 기질에 나가노만의 관리, 정보기술(IT)이 보태진 결과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나가노 사람의 이미지는 ‘근면과 성실’이다. 고령자 취업률 1위로 대표되는 각종 통계에서도 이런 면면이 확인된다. 비만 비율, 흡연율 등이 낮아 81개 건강 지표 가운데 31개가 최상위권이었다. 이혼율이 낮아 홀몸노인 비율도 최저 수준이다. 높은 주택 소유 비율 덕분에 재택의료 환경도 잘 갖춰졌다.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통계는 고령자 취업률이다. 건강수명이 높은 이유도 은퇴 후 집에만 붙어 있지 않고 몸을 계속 움직이는 고령자가 많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여성 평균 수명은 나가노와 1~2위를 다투는 오키나와의 남성 평균 수명이 유독 짧은 이유도 남성 고령자의 취업률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을 계속함으로써 얻는 연대감이 주는 효과는 더 크다. 노인학 권위자인 곤도 야스유키 오사카대 교수는 “연대감은 고령자가 급격히 쇠약해지는 주원인인 고독감을 없앤다”고 말했다. 근면·성실한 기질에 체계적인 관리가 더해지면서 나가노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나가노는 일본 재택의료의 발상지다. 80여 년 전부터 왕진 의료의 전통이 자리 잡았다. 의사, 치의사, 약사, 보건사, 영양사들이 협력한 지역 보건 의료 활동도 활발하다. 왕진과 간병을 함께 받을 수 있는 재택의료 환경이 전 지역에 갖춰져 있다. 산이 험하고, 눈이 많은 지형적 한계도 IT로 극복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3일 나가노현 이나시는 일본 최초로 원격의료를 시행했다. 병원과 약국을 오가기 힘든 산간 지역 주민들에게 드론으로 의약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도 가장 먼저 시작했다.

나가노=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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