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봄꽃 단상

입력 2024-04-10 20:04   수정 2024-04-11 00:13

휴일에 동네 어귀 양지바른 보도블록 갈라진 틈에서 이 아이를 보았다. 하도 작아서 자칫 밟을 뻔했다. 수줍게 고개를 배시시 내민 진보라색 제비꽃이다. 무심코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가 한참 바라보았다. 소박하지만 예뻤다. 자세히 보니 더 예뻤다. 어디서 날아와 이 번잡한 도시의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고 긴 겨울을 용케 견뎌냈을까. 작은 감동까지 밀려왔다.

그날따라 이곳 저곳에서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로 차를 타고 바삐 다니다 보니 땅을 보지 못했다. 가을은 하늘에서 오고 봄은 땅에서 온다는데, 걸은 덕분에 계절도 제대로 보게 됐다. 목련과 진달래, 개나리, 벚꽃은 지고 있다. 이제는 배꽃, 복사꽃, 유채꽃, 라일락, 철쭉, 모란, 장미의 차례다. 식물이 매년 어김없이 자기 순서가 되면 꽃을 피워 올리는 건 참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이른 봄에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는 걸 알고 있다. 나무들은 보통 잎을 먼저 낸 후에 꽃을 내밀지만 봄에는 반대다. 다른 풀이나 나무가 자라서 햇볕을 가리기 전에 수정해 번식하려는 생존전략이다. 동물과 달리 발 없는 꽃나무들은 한자리에서 조용히 피고 지지만, 그들 나름대로 자연의 이치에 몸을 맡기고 순응하고 진화하면서 지구 역사와 함께 해왔다.

식물학자들은 식물이 동물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잘못된 편견이라고 말한다. 식물국회니, 식물인간이니 하는 말부터 그렇다. 식물이 들으면 모욕을 느낄 일이다. 식물도 뇌 기능이 있어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게 과학적 실험으로 입증됐다고 한다. 사과나무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익어가고,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 아름답게 자라고, 홍당무는 토끼가 나타나면 사색이 된다고 한다.

식물과의 교감에 빠져 ‘반려식물’을 애지중지하는 사람이 많다. 식물은 ‘키우는’ 게 아니라 ‘기른다’고 말한다. 조금만 소홀하면 시들어 버려 주인의 불찰을 깨우쳐준다. 내가 제비꽃 한 송이에 발길을 멈췄듯, 나이 먹어가면서 비로소 꽃과 나무가 좋아지기 시작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고는 한다. 몸 안에 동물성은 줄어들고 식물성이 자란다는 징표가 아닌가 싶다.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봄꽃을 바라보며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했다. 고은 시인은 세 줄짜리 시로 인생을 정리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올 때 못 본/그 꽃”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말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꽃들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되고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된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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