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없었으면 어쩔 뻔…잘나가던 톰브라운의 '굴욕'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4-04-29 13:00   수정 2024-04-29 14:51

“한국시장 DTC(소비자 직접 판매) 매출이 빠지면 모든 사업분야가 역성장.” 미국 명품 브랜드 톰브라운의 올해 1분기 글로벌 실적을 요약한 문장이다. 홀세일(도매) 비중을 줄이고 직영 체제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는 톰브라운의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수년간 DTC 비중을 확대해왔지만 올해 들어 실적 성장세가 꺾이면서다.
한국 매출 빠지면 모든 사업부 역성장
29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톰브라운 모회사인 이탈리아 패션그룹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은 올 1분기 톰브라운이 매출 7910만 유로(약 1166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분기 매출 1억1330만 유로(약 1670억원)에 비해 30.2% 감소한 수치다.

제냐 그룹은 1분기 실적 자료를 공개하면서 “유럽·중동·아프리카(EMEA)와 중화권 지역에서 특히 실적이 저조했는데, 특히 EMEA 지역의 실적이 감소한 데는 브랜드 DTC를 지원하기 위해 도매사업을 축소하기로 한 탓이 컸다”고 분석했다. 톰브라운은 도매사업 부문에서 3450만 유로(약 508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전년 동기 6970만 유로(약 1027억원) 보다 무려 50.5%나 줄었다.


그나마 DTC 매출 덕에 전체 매출 감소폭이 줄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톰브라운의 DTC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국시장 직진출로 올린 수익을 빼면 다른 사업부와 마찬가지로 DTC 또한 역성장했다. 그룹은 “톰브라운 한국사업부 인수 영향을 제외하면 DTC 매출은 13.9%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최근 명품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도 톰브라운에 대한 인기가 식지 않은 한국시장 덕분에 체면치레는 했지만, 한국 사업 매출을 감안하더라도 도매 사업부 매출 하락분을 상쇄하지는 못한 셈이다.
톰브라운의 DTC 전략
톰브라운은 팬데믹 이후 명품시장이 호황이던 시기에 적극적으로 DTC 전환 정책을 시도했다. DTC는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제조사가 직영 매장이나 온라인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형태다. 톰브라운은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도·소매업자들과 계약을 점차 축소하고 오프라인 직영점과 온라인을 통한 판매로 유통 구조를 혁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6년 14개에 불과하던 직영 매장은 2020년 초 70여개까지 늘었다. 현재는 전세계에 86개의 직영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한국법인을 세우고 직진출을 시작했다. 톰브라운의 CEO 로드리고 바잔은 WWD의 인터뷰를 통해 “고객은 중국 일본 한국 미국 모두 동일하다”며 “한국과 두바이 매장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우리는 소매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바잔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듯이 톰브라운의 DTC 전략에는 전세계 매장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품질을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주요 명품매장들이 직영 체제를 고수하는 이유다. 직영 체제를 강화할수록 본사가 서비스 품질과 제품 가격을 통제하기가 쉽다.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장점도 있다.
톰브라운, 대체 불가능한 명품 될까
한동안 톰브라운의 DTC 전략은 효과가 있어 보였다. 2018년 제냐가 인수한 이후 톰브라운의 매출은 2억6400만 유로에서 지난해 3억8000만 유로로 증가했다. 다만 DTC 전략이 시장 침체기에도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전제조건으로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충성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고객들은 주머니가 가벼워지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고, 이로 인해 보다 '가성비' 있는 대체제를 찾는다는 것이다. 직접 구매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의 충성 고객에 국한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티셔츠를 원하는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 매장만을 찾을 가능성은 작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샤넬 루이비통 등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 만큼 강력한 수요를 가지지 못하면 현지 사정에 밝은 소매 유통망 없이 비수기를 넘기가 어렵다. 제조사의 시장 장악력이 다소 부족할 경우 유통사가 현지에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고객 수요를 이용해 어느 정도의 판매를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역할을 유통업체에 맡기는 편이 낫다. 도매사업 비중을 줄이면 재고가 소매업체 창고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제조사에 남기 때문에 판매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면도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들이 수년간 부진한 매출을 보이는 것도 DTC에 집중한 전략이 잘 먹히지 않는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앤드컴퍼니는 "고객이 어디에서나 나이키를 구매하길 원하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도매를 급격하게 줄이는 것은 잘못된 조치처럼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톰브라운은 올해 DTC 성장률 목표를 매출 10배 이상 증가로 잡았다. 명품산업 침체기가 시작된 지금, 패션시장에서 톰브라운은 독보적인 명품 브랜드로 거듭날 것인가. 대체 가능한 대중 브랜드로 남을 것인가. DTC 성과에 달려 있다는 게 글로벌 명품업계의 시각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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