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벨기에 작가 한국 나들이…"현실보다 상상이 더 흥미로워요"

입력 2024-04-29 19:00   수정 2024-04-30 00:49


극도로 내성적인 작가가 한국을 찾아왔다. 벨기에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다. 그는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와 서초구 스페이스이수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두 곳의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그대로 들고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을 찾는다.

벨데는 말 그대로 ‘방구석 작가’다. 집을 나서거나 남에게 노출되는 것을 싫어한다. 한국에서 3곳의 전시회를 열면서도 공식 행사를 하지 않았다. 외부 작업도 없다. 집에서 책과 TV, 영화 등을 보며 바깥세상을 구경한다. 그리고 실제 이미지에 상상을 더해 현실과 상상 어딘가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작품으로 만든다.

아트선재센터 전시를 관통하는 건 두 편의 영상이다. 야외에서 찍은 것 같지만 영상 제작은 모두 작업실 안에서 이뤄졌다. 자동차, 바위산, 과일 가판대 등 바깥세상을 세트장으로 창조했다. 소품은 모두 벨데가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서울 전시에서는 소품들도 함께 설치됐다.

2층 전시장에는 눈알이 뚫린 라텍스 마스크가 있다. 벨데는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본뜬 마스크를 배우에게 씌우고 영상을 찍었다. ‘내 얼굴로 180도 다른 삶을 살면 어떨까’라는 상상이 영감이 됐다.

실제 자동차를 그대로 옮겨놓은 소품도 등장했다. 내부 기어, 계기판과 핸들까지 모두 진짜 자동차와 똑같을 정도로 정교하다. 특이한 점은 번호판이다. 숫자, 글자 대신 패턴을 심었다. 이유에 대해 벨데는 “내 허구의 세계에 특정 국가나 도시를 반영하기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벨데의 회화도 소개됐다. 그가 그리는 회화는 반드시 하단에 텍스트가 놓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림 밑에 글귀를 적어 작품이 신문 사진기사처럼 느껴지게 의도했다. 하지만 글귀들에는 맥락이 없다. 유명한 인물의 말을 인용하거나 라디오에서 나온 이야기, 꿈에서 들은 말을 무작위로 썼다. 관객이 회화와 텍스트의 연관성을 상상하게 하기 위해서다. 전시 제목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도 작품 속에 쓰인 문구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가 한 말에서 따왔다.

벨데의 영상·회화 작품 등은 집 안에서 만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외부 세계를 정교하게 드러내고 디테일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그의 목탄화다. 풀밭에 드러누운 자신의 모습을 담았는데, 풀잎 하나하나 앞에 두고 그린 듯 세밀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이 장소 역시 실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장소’다.

“무언가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답답하고 장애물이 가득한 현실과 달리 상상 속에서는 무엇이든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다.”

서울 2곳에서 열리는 전시는 5월 12일까지. 이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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