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왜 중년 남성들은 친구가 없을까?

입력 2024-05-03 19:12   수정 2024-05-04 00:41


“어쩌다가 중년 남성들에게 친구가 없어졌는지, 당신이 좀 써줬으면 해요.”

미국 보스턴 글로브에서 특집 전문 기자로 일하는 빌리 베이커는 어느 날 편집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자리로 돌아와 자기가 적임자가 아닌 이유를 궁리했다. 자신은 사교적이고 외향적이라 친구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리는데 이상했다. 자주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을 언제 봤는지 가물가물했다. 그는 한 해 전 마흔 살이 됐다. 아내와 아들 둘이 있었다. 주중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은 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 외 시간 대부분은 아이들 위주로 돌아갔다. ‘집-회사-집-회사’라는 쳇바퀴 도는 생활이었다.

“그 편집자의 말이 맞았다. 난 정말이지 이 이야기의 적임자였다. 어디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뼈아플 만큼 전형적이었던 것이다.” 현실을 인정한 베이커는 ‘중년 남성에게 닥친 우정의 위기’란 주제로 기사를 쓰기로 했다.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바로 그 여정을 다룬 책이다. 저자가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사회적 유대감을 되찾아 가는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전문가들과의 대화, 연구 자료 등을 통해 중년 남성의 유대감 문제와 극복의 방향성도 함께 찾아본다.

첫 프로젝트는 고교 시절 최고의 하루였던 ‘땡땡이치는 날’ 재현하기였다. 저자는 몇 번을 망설인 끝에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93년도 졸업반을 위한 땡땡이 날이 돌아온다! 데이지 필드. 5월 19일. 오전 10시.” 대망의 디데이. 오전 10시15분이 돼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10시25분께 한 명이 터덜터덜 걸어왔고, 모두 20여 명이 모였다. 별걸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는 건 소셜미디어 속에서 근황을 알고 지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저자의 다음 모험은 ‘뉴 키즈 온 더 블록’ 크루즈 모임에 과감히 끼어드는 것이었다. 1980~90년대 인기였던 보이 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매년 배 위에서 여는 팬 미팅이다. 팬들은 거의 여성이었다. 거기에 포인트가 있었다. 저자는 ‘여자들만의 여행’을 취재하며 영감을 얻고자 했다. 이들은 쉽게 어울리고 유대감을 형성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데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책은 이런 인류학적 설명을 내놓는다. 아주 오래전 다른 이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건 여성들에게 기본적인 생존의 열쇠가 됐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은 사냥하느라 나가 있었고, 침묵을 요구하는 활동이었다. 그런 시간이 누적되면서 남성은 외로움을 자신의 숙명이라 여기게 되고, 풍성한 유대감으로 서로 온기를 나누는 행동은 사내답지 못한 짓으로 여기게 됐다는 설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통화로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은 어렵다. 길게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통화하고 45초쯤 지나면 “알았어,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라며 끊는 게 보통이다. 대신 남자들에겐 유대감을 위한 어떤 활동이 필요하다. 스포츠, 군 생활, 학창 시절처럼 무언가에 치열하게 참여하는 시기를 겪으며 가장 깊은 우정을 쌓는다.

그것 역시 유전자에 내장된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함께 사냥하며 수백만 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 남자들에게 유대감을 쌓는 방법일 뿐 아니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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