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탄핵" 내뱉는 野…'레드라인' 사라진 이유 [정치인사이드]

입력 2024-05-11 09:56   수정 2024-05-11 09:56



"윤 대통령의 (채 해병 수사 관련) 불법 개입과 지시가 확인되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윤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 시절 겪었던 어려움을 그대로 겪을 수 있다. 올 연말에서 내년 초까지가 '퍼펙트 스톰'일 것으로 본다."(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탄핵은 정치인이나 국회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들이 판단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치권에서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던 탄핵 언급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 야권에서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모양새다.

22대 총선에서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을 부각해 비례대표 13석을 얻은 조국혁신당이 가장 앞장서고 있다. 조국 대표는 10일 뉴스토마토 '박지훈의 뉴스인사이다'에 출연해 '정권 조기 종식'의 구체적 방법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조기 종식의 방법, 시기를 현시점에는 특정할 수 없다고 본다. 여러 가지 경로가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조 대표는 탄핵도 정권 조기 종식의 방법에 포함될지 여부에 대해 "'여러 가지 경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계환 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말했지 않았나"라며 "대통령이 격노하면서 이 수사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을 것이다. 그 말의 내용이 수사에 대한 불법적 개입과 지시였음이 확인되면 그건 바로 탄핵 사유"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탄핵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에 대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에 지금 쌓여 있는 인화성 물질은 훨씬 많다"며 "올 연말에서 내년 초까지 가는 시기가 '퍼펙트 스톰'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지금 20%대, 30%로 지지율이 나오는 상황이 위험하다고 총체적으로 보셔야 한다"며 "윤 대통령이 탄핵 때 수사하셨던 검사로서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뭔지 알고 계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앞서 전날 저녁 서강대 강연에서도 "대통령께서 어느 정도는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는 판단을 하셔야 한다"며 "탄핵은 굉장히 대한민국의 불행한 역사이고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기에, 정부가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생각에서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22대 국회에서 175석의 거대 의석을 갖게 된 민주당도 공개적으로 탄핵을 거론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같은 라디오에서 "점점 국민들의 분노가 임계치까지 끓어오를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지지율보다 낮다"고 했다.

이어 "국민들이 총선에서 윤 정부에 분명한 어조로 야당에 192석을 몰아줬고 정권 심판을 했다"며 "더 심한 정치적 결정까지 단 8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탄핵소추에 필요한 의석수인 200석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2016년 탄핵 당시에도 야 4당을 합쳐 170석밖에 안 됐지만 실제로 탄핵 의견을 했을 땐 234표나 찬성이 나왔다"며 "탄핵은 정치인이나 국회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들이 판단하고 명령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최악의 국정 지지율에 '역풍' 우려 않나
그간 정치권에서는 '탄핵'을 거론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여겨졌다. 민주적 정당성이 가장 높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자칫 역풍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쉽게 탄핵이 야권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로는 우선 최악의 국정 지지율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1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24%로 나타났다.

갤럽에 따르면, 이는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역대 대통령의 취임 2주년 지지율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이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1.2%였고,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였다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인 만큼, 야권에서 탄핵을 언급하는 데 대한 심리적 장벽이 매우 낮아졌을 거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전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 원내대표 역시 "지금 대통령 지지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의 지지율보다 낮다고 하지 않느냐"며 '탄핵 거론'의 정당성을 찾았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경험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계속되는 민주당의 초강경 발언에 대해 "탄핵이라는 역사적 경험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21대 국회 말기에 쟁점 법안을 올리고 '총선 결과를 거부한다'고 재촉하는 것 역시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예고하는 뉘앙스로 충분히 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가 시민단체의 '촛불 집회'에서 폭발했다는 점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잦은 '탄핵 거론'을 대해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는 10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22대 국회에 들어가기도 전에 탄핵, 특검은 거의 매일 나오는 이슈가 됐다"며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누구나 막 꺼내니까 오히려 탄핵의 중요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말 탄핵을 할 만한 것을 탄핵해야 하고 특검할 만한 것을 특검해야 히는데, 야당 마음에 안 들면 전부 다 탄핵, 특검으로 가버린다"며 "이것은 정말 야당의 대표라든가 이런 분들이 신중하게 발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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