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화해를 선물하고 떠난 로미오와 줄리엣

입력 2024-05-10 17:54   수정 2024-05-11 00:56

뜬금없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베토벤 교향곡도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도 아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운전할 때, 그리고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흥얼거리는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가장 아낀다. 곡의 가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와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온 나. 세상에 백만 송이 장미를 피워야 하는 사명이 있는데 그 장미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난다. 그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 송이 장미를 피우면 드디어 다시 나의 별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의 가사는 항상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애절함 속에서 다양한 영감도 준다.

사람과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준 숙제이고 사명이다. 인간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애증, 빗나간 사랑, 질투 같은 어두운 모습도 동시에 지닌 살아있는 존재다.

지난 수천년간 인간이 예술이라는 행위를 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감정은 사랑일 것이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 그중에도 수많은 장애물 탓에 더욱더 격정적이고 그 끝이 가슴을 메이게 하는 비극적 사랑이야말로 수많은 예술의 원천일 것이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곡에 케네스 맥밀런이 안무한 발레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하던 때였다. 영상자료를 보며 안무와 연출을 체크하던 중 중세 시대를 잘 그린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유명한 안무와 의상 그리고 무대여서 그러려니 하던 찰나 중세의 배경에서 문득 올리비아 허시가 줄리엣 역을 맡았던 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를 다시 본 뒤 내친김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20세기의 미국 베로나비치로 옮겨 현대화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주연한 작품까지 다시 봤다.

발레 공연을 준비한다면서 악보는 다 덮어두고 이렇게 영화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보고 나니 디캐프리오와 데인즈가 연기한 죽음이 너무나도 허망하고 찢어지게 슬프게 다가왔다.

20여 년 전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에서 콩쿠르를 마치고 베로나로 여행을 갔다. 실존하지는 않았으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나눈 것으로 그려졌고, 가상의 줄리엣 집마저 있는 도시가 베로나다. 베로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은 슬픔을 간직한 채 하늘로 떠났다. 하지만 현대의 베로나는 그 연인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슬픔으로 인해 새로운 사랑이 싹트게 하는 도시였다.

결론적으로 그 둘의 희생으로 분명 몬터규 가문과 캐플렛 가문도 화해했을 것이고, 현실의 사람들도 사랑이 가져다주는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됐다. 베로나 어느 광장에 앉아서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20년 전의 내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지금보다 젊었던 그때의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분주하게 다니는 시민들? 아름답게 키스하는 연인들? 그 젊은 연인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손 잡고 있는 노부부? 그 노부부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던 것일까?

영화 속 캐플렛 가문의 무도회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났을 때 음유시인은 노래한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장미가 피고 지듯 젊음도 시드는 것’ 노래가 복선이 되어 그들의 장미는 피고 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은 불같은 진실한 사랑으로 백만 송이 장미를 피워 작품 속 베로나 사람들에게 화해와 평화를 선사하고, 현실의 베로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설렘과 희망을 주며 그들의 별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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