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는 글렀다"…대형병원 '의료체계 전환' 본격화

입력 2024-05-22 14:17   수정 2024-05-22 14:29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대부분이 20일 '복귀 시한'에도 돌아오지 않으면서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매일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전공의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도 소위 '빅5'를 비롯한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 들어갔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남대병원은 전날 각 진료과 과장으로 구성된 임상 교수회의를 열고 전공의 이탈 사태 장기화 대책을 논의했다. 지난 16일 법원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결정과 20일이었던 내년 전문의 시험 응시를 위한 복귀 시한 도달에도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자 인력 구조 개선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전남대는 상급종합병원들의 구조조정이 표면으로 드러난 첫 사례다. 의료계에 따르면 다수 상급종합병원들은 지난 16일 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전공의들의 복귀 수준에 따른 외래 진료 축소 비율 밎 중증 진료 비중, 인력 구조 개편 방안 등 구조조정 계획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그 동안은 누적되는 적자에도 전공의 복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조조정에 선뜻 나서지 못했지만 인력 공백이 3개월이 넘어선 상황에서 더 이상은 구조조정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 상급종합병원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시작된 2월20일 이후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빅5 대형병원들은 하루에 10억원이 넘는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작은 대학병원들도 하루 3억~7억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

소속 의사 수의 39.8%에 달하는 전공의가 빠져나가면서 생긴 인력 공백으로 진료 여력이 줄며 입원 환자 수가 평시 대비 67%(5월20일 기준)로 줄었지만, 전공의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의 인건비나 기존의 진료량에 맞춰 늘려놓은 병상 운영비 등 고정 비용은 그대로라서다.


이 같은 상급종합병원의 움직임에 맞춰 정부도 관련 지원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일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에 대한 근로 의존도를 낮추고 경증·외래·검사를 대폭 줄여 중증 환자에 집중하더라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수가 및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발족한 사회적 협의체인 의료개혁 특별위원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위는 지난 10일 열린 두번째 회의에서 의료개혁 과제의 최종 목표로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을 제시하고 '바람직한 상급종합병원의 모습'을 제시했다.

중증·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등 보상을 충분히 높여 현재는 52.8%에 불과한 중증 진료 비율을 높이고, 소속 의사의 39.8%에 달할 정도로 높은 전공의 의존도는 절반인 20%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이 특위의 구상이다. 빅5등 핵심 상급종합병원을 고도의 중증 진료를 집중 치료하는 4차 병원으로 키우는 방안도 특위 내에서 논의 중이다.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수록 전공의들의 입지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관측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주요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정원을 줄이는 대신 병원들이 전문의, 진료지원(PA)간호사 등 대체 인력을 뽑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지원책을 고안 중이다.

향후 특위에선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과 연계된 후속 조치로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비급여 다빈도 항목에 대한 혼합진료 금지, 레이저 등 미용 의료 자격 확대, 개원 면허 신설 등 그간 과잉 진료 논란이 일었던 분야에 대한 개편이 논의될 전망이다.

이 가운데 레이저 등 미용 의료 자격 확대는 병원을 최종 사직한 전공의들이 선택 가능한 이른바 '미용GP(일반의)' 시장을 정조준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필수의료는 수가 인상을 통해 보상을 늘리되 그간 전문의 취득 없이 미용 시술만으로도 세후로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소득을 얻으며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 미용GP의 지대는 구조적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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