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팔고 있는 꼴"…미국도 밀어붙였는데 '급반전'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입력 2024-05-26 08:37   수정 2024-05-28 15:58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Hyped Hydrogen-상(上)



"꿈의 수소는 거짓말을 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탄소중립이 달성되고 난 2050년 이후에나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

이달 9일 영국 정부가 가정용 수소 난방 시범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산업용 폐열과 열 펌프 등 열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수소에 비해 훨씬 비용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영국 정부는 수소 난방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각종 기술들의 개발 현황을 따져본 후 2026년에 수소 난방 시범사업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입 하이드로젠'이었나탄소중립에서 미미해진 수소 역할론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위한 '꿈의 자원'이라 불리던 수소가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3년 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 넷제로 시나리오'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연간 7000만 톤(70 Mtpa)의 수소 생산 설비가 추가돼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연간 수소 생산 용량이 9400만 톤 내외였던 것에 비해 75%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이는 2050년이면 연간 8억 톤에 달하는 저탄소 수소 수요가 있을 것이란 수소위원회의 예측과 맞물려 폭발력을 발휘했다.

이후 전 세계가 수소 시장의 성장성에 들썩였다. 특히 미국 정부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수소 생태계에도 막대한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약속하면서 장밋빛 수소 꿈에 불을 지폈다. 내로라하는 에너지 기업들이 앞다퉈 수소 투자 확대를 발표했고, 전해조 설비를 제조하는 스타트업들은 수주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최근 수소의 역할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의 Lex는 "수소가 탄소중립(넷제로)에서 차지할 역할은 연간 3억5000억 톤도 채 안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초 8억 톤의 수소 시장이 열릴 것이란 최대 전망치가 절반 이하로 깎인 것이다. S&P 글로벌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2024년은 수소 경제의 성패가 갈리는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6개월여가 흐른 지금 '과장 광고된 수소(hyped hydrogen)'를 우려하는 보고가 더 많아지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발표된 수소 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총 4500만 톤의 용량을 공급한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최종 투자 결정(FID)을 받은 용량은 300만 톤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아직 첫삽을 뜨지 못한 수소 제조 설비들이 대부분이다. 블룸버그NEF는 최근 "2030년까지 연간 수소 공급량이 1600만 톤에 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IEA가 예측한 연간 수소 생산량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수소 만드는 에너지 비용, 원자력의 5배
현재 수소 시장은 연간 1억 톤 내외 생산되는 그레이수소(석유가스 추출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수소)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친환경 전기로 전해조 설비를 가동해 만드는 그린수소 생산량은 연간 10만 톤(0.1Mtpa) 미만이다. 수소 기업들이 2년 전에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던 생산량(50만 톤)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린수소 프로젝트는 전부 시범 설비거나 소규모 상용화에만 성공했다.

이는 수소 생산업체들이 수소 자동차, 그린철강 등 수소 연료 고객사들과 정부 지원금을 선점하기 위해 과대 포장된 프로젝트를 발표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수소 업계의 기술 개발 노력에도 불구하고 ?높은 초기 비용이 개선되지 않고 ?수소 연료를 대체할 저탄소 기술(열 펌프, 열배터리 등)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도 원인이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친환경 수소 생산 비용은 ㎏당 4.50달러에서 6.50달러 수준이다. 당초 IRA 등의 지원을 토대로 3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정도 경제성은 요원하다는 평가다. 전해조 설비 설치 비용, 인건비, 금융비용 모든 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전해조 플랜트에 공급되는 친환경 전기 값도 좀체 떨어지지 않고 있다. Lazard에 따르면 한때 화석연료 등 전통에너지 발전과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를 달성했던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LCOE)는 지난해엔 최대 96달러까지 올랐다.



수소의 에너지 함량과 생산 비용 등을 바탕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균등화수소생산원가)을 계산하면 1MWh당 200달러로 추산된다. 천연가스의 LCOE는 미국에서 8달러/MWh, 유럽에서는 약 30유로/MWh다. 원자력은 미국에서 1MWh당 최저 40달러까지 떨어진다. 그레이 수소는 탄소 배출량에 대한 탄소 가격을 포함해도 1MWh당 86달러에 불과하다. 즉 기존 수소 고객사들이 친환경 수소로 전환하기 위해 추가로 지불하는 비용인 '그린수소 프리미엄'이 114달러를 웃돈다는 뜻이다. 생산만 해도 이 정도인데, 보관과 운송 비용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비싸진다.

전기화가 수소 본연의 역할을 넘보는 것은 수소에 대한 수요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사용량의 25%를 차지하는 산업용 열 공정의 경우 저열 공정에서는 산업용 히트펌프가, 철강 유리 제조 등 고열 공정에서는 열배터리가 수소를 대체하고 있다. 전기차보다 덩치가 큰 운송수단인 대형 트럭, 비행기, 선박 등에서도 당초 수소가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았지만, 최근엔 전기차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다임러 등이 주행거리가 800km까지 가능한 전기트럭을 선보이고 있다. 수소 충전 인프라의 확산 속도가 전기차 충전소에 비해 더딘 것도 또 다른 난관이다.

보스턴컨설팅사는 "고비용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수소 고객사들의 확정된 구매 계약은 현재까지 200만 톤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글로벌 자본이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데 우선 투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에르 분쉬 벨기에 중앙은행 총재는 "1차적으로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친환경 전력에 대한 수요가 안정적으로 충족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그린수소는 에너지 전환이 끝날 (2050년) 무렵에야 유용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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