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의회 총선거에서 강경 우파 진영이 더욱 약진해 유럽 정치권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강경 우파 진영이 연합해 집권 중도우파에 이어 2위 교섭단체를 형성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번 선거 결과로 EU에서 반이민, 보호무역 정책이 힘을 얻고 친환경 정책은 후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탈리아에선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다수당 자리를 탈환하며 소속 강경 우파 교섭단체 유럽보수와개혁(ECR) 의석을 73석으로 4석 늘리는 데 일조했다.
프랑스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가 주도하는 교섭단체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 연합은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을 제명하고도 9석 늘어난 58석을 차지했다. 반면 중도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은 의석이 23석 줄어 79석에 그쳤고,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도 71석에서 52석으로 축소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재신임을 묻는 동시에 지명도 높은 현역 의원들을 앞세워 르펜 돌풍을 잠재우겠다는 포석이다. 그러나 하원 577석 중 88석을 보유한 제1 야당 RN이 다수당을 차지하면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 프랑스에서 1997년 이후 처음으로 ‘동거정부’가 탄생할 전망이다.
독일에선 AfD가 15.9%의 역대 최고 득표율로 중도우파 야당인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29.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의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지지율이 13.9%에 그쳤고, 연정 파트너 녹색당과 자유민주당 등도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강경 우파가 급부상하면서 EU 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첨단 산업 육성 정책을 강화하고 무역에선 보호주의 기조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가 급등과 경제 성장률 저하의 원흉으로 지목된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사이먼 힉스 유럽대학원(EUI)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205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하려는 유럽 그린딜 정책에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하는 계획과 재생에너지 보조금 정책도 후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강경 우파의 약진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아랍·아프리카 이주민 문제와 관련해선 국경 통제 강화, 불법 이주자 강경 단속 등 정책이 5년 동안 EU 의제의 최우선 순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 모든 정치그룹이 과반(361석)에 한참 못 미친 만큼 정치그룹 간 ‘대연정’을 구성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협상의 주도권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중도우파 정치그룹 EPP가 쥐고 있다. EPP의 최우선 과제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EU 정상회의에서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로 추천될 경우 유럽의회 인준 투표 가결에 필요한 과반 찬성표를 확보하는 것이다. 일단 EPP는 S&D 및 자유당과 ‘친 EU 대연정’을 유지할 계획이다. 강경우파나 극우와 손잡으면 부담이 커진다고 판단해서다.
이현일/송영찬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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