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말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이던 7년차 양모씨(39)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 대출 규제가 강화돼 9월 이후부터는 대출이 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란 소식을 뒤늦게 접하면서다. 양씨 부부는 서울에서 집을 사기 위해 수년간 준비해온 계획이 어그러질까 걱정이다. 양씨는 "수천만원이 줄어들면 서울 내에선 갈 수 있는 지역이 줄어들거나 평수가 확 줄어들지 않느냐"며 "대출 없이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은 한계가 있는데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고 해야 하니 속상하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연말이나 돼야 움직일 수 있는데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대출 규제 강화를 앞두고 실수요자들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규제 강화가 이미 지난해부터 예고됐던 터라 발 빠른 실수요자들의 경우 기존 예정돼 있던 7월을 마지노선을 보고 올해 초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아 '내 집 마련'에 성공했지만 그렇지 못한 실수요자들은 주택 구입을 포기하거나 고금리에 '막차'를 타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강화 방안이 적용되면 다른 대출이 없는 연봉 1억원의 직장인이 변동금리 연 4%, 만기 40년의 원리금균등분할상환 방식으로 주담대를 받을 경우 스트레스 DSR 1단계에선 0.38%포인트가 적용돼 7억54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지만, 1.2%포인트를 적용하면 대출한도는 6억7200만원으로 지금보다 8200만원이 줄어든다. 연봉 5000만원 직장인의 경우는 현재 3억770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수도권에선 3억3600만원만 가능해 지금보다 4100만원을 덜 받는다.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이다.
주담대뿐만 아니라 전세대출도 조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신한은행은 지난 26일부터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중단한다. △임대인이 소유권을 이전하는 경우 △선순위채권을 말소하거나 줄이는 경우 △ 주택을 처분하는 경우 등 조건이 붙은 전세대출은 받을 수 없다. 이런 조치는 다른 시중은행들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정부가 초강력 대책을 내놓은 것은 가계 부채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22일 기준 722조528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715조7383억원에서 이달 들어서만 6조7902억원 급증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주담대 잔액은 565조8956억원이다. 지난달 말 559조7501억원에서 6조1455억원 늘었다. 지난달에만 7조5975억원 증가했는데 은행들이 월별 대출 잔액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래 사상 최대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로 대출 증가세를 조절해보려는 시도가 계속돼 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강화했다"며 "정부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초강력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특히 서초구에선 실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전용 84㎡가 5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신고가를 계속 쓰고 있고 강북권 핵심 지역인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서도 20억원대 이상으로 상승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서울 내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역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는 이제야 집값 신고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집값 급락기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지만, 회복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것이다.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대표는 "이전에 15억원 고가 주택 기준이 있었을 때도 강남 3구는 큰 영향이 없었다"며 "특히 강남과 서초는 대출 규제와 거리가 멀다. 애초에 대출로 매수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아무래도 노·도·강은 대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라면서 "대출 규제가 더 세지면 집값 상승이나 회복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사실상 서민들은 집을 살 수 없게 하는 정책인 것 같다"면서 "내 집 마련에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출을 옥좨 시장을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은 대출 의존도가 높다. 특히 서민들은 대출 없이는 집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 자금줄을 조인다면 서울 내에선 강남권과 비강남권의, 더 넓게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자산 격차는 더 심화할 수 있는 밖엔 없다는 설명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아무래도 대출로 시장을 규제하다 보면 집을 살 때 대출이 꼭 필요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차이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현금 부자'들은 대출과 상관없이 집을 사겠지만, 일반 서민들은 대출이 어려워 매수를 못 하게 되니 집값 역시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도 "과거 고가주택 15억원 규제가 있을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며 "당시 금리가 올라서 대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강남권 등 대출 의존도가 낮은 지역은 대출과 관계없이 거래가 이어졌지만, 그 이하 가격대 시장은 실수요자들의 원리금 부담이 커지면서 거래가 부진했고, 일부 저가 급매도 나와 집값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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