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달러의 강세…‘트의 공포’ 재현되나 [트럼프 스톰③]

입력 2024-11-09 08:18   수정 2024-11-0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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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트럼프 스톰]


트럼프의 승리를 누구보다 빠르게 예측한 건 자본시장이었다. 한국 시간으로 6일 오전 출구조사가 해리스의 우위를 발표했을 때에도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미국의 지수선물은 일제히 급등했으며 채권수익률(시장금리)도 폭등하는 등 투자자들은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과 관련된 거래에 몰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정책은 자본시장에도 ‘트럼프 효과’와 ‘트럼프 노이즈’를 동시에 가져다줄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특정 산업군의 주가를 상승시키는 기폭제가 되겠지만 그의 예측 불가능한 발언과 행동이 시장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우려 또한 적지 않다.
금리부터 환율까지…트럼프 트레이드
- S&P500 e-mini 선물 2.3% 상승
- 소형주 러셀2000 선물 약 6% 급등
-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 4개월 만에 최고치인 4.47% 기록
- 미국 달러인덱스 1.6% 상승
- 비트코인 사상 최고치인 7만5389달러 기록

숫자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6일 오전부터 투자자들은 ‘트럼프발’ 세금 인하와 금리인상에 베팅했다. 이날 하루 동안 달러가 급등하고 미국 주식 선물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트럼프 트레이드가 시장을 장악했다.

트럼프 트레이드(Trump Trade)는 트럼프의 정책과 발언에 따라 특정한 투자 전략이나 거래가 활성화된 현상을 의미한다. 이미 트럼프를 경험한 세계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트럼프의 경제 정책 기대감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특정 자산이나 업종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봤다.

트럼프 트레이드는 △재정 정책 확대와 감세 정책 △달러 강세 △미국 중심 보호무역주의 강화 △인프라 투자 및 에너지 업종의 강세를 뜻한다. 이는 곧 트럼프의 슬로건, 즉 MAGA가 자산시장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에서도 ‘US 대 Non-US’가 뚜렷하게 대비될 것이란 뜻이다.

큰 변화가 예상되는 것이 재정과 감세, 곧 금리정책이다. 트럼프발 국채 공급 확대 위협은 채권 가격을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으며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최근 며칠 동안 7월 초 이후 처음으로 4.3%를 넘어섰다. 일각에선 그의 집권 2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트럼프는 8월 초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최소한 거기(Fed)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독립성 침해 우려를 샀다. 1기 재임 기간에도 내내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Fed 의장을 향해 금리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지난 10월 블룸버그 인터뷰에선 재선 시에 “그(파월)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경우 해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2026년 임기가 끝나는 그를 재임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 정책도 변수다. 그는 Fed가 지난 9월 ‘빅컷’(0.50%포인트 금리인하)을 단행하자 ‘정치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지난 7일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법적으로 Fed 의장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이후 그는 “대통령이 연준 의장이나 다른 연준 총재를 해임하는 것은 법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not permitted under the law)”고 말했다.

시장에선 파월의 잔여 임기 동안 트럼프 당선인과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트럼프의 재선으로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더뎌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공약대로 높은 세율의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커져 Fed의 금리인하가 일찍 중단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외환)파생전문위원은 “무역 관세 부과에 따른 수입 물가가 오르고 불법 이민자 추방으로 인건비도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미국의 금리인하 속도는 떨어지고 달러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려를 뒷받침하듯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된 6일 저녁엔 원·달러 환율이 약 7개월 만에 1400원대로 올라섰다.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넘은 것은 지난 4월 16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 달러는 한국 원화, 일본 엔화를 포함한 다른 주요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강달러가 임기 내 지속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환율 문제를 언급하며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 조정을 압박했다. 2019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 원화가 평가절하되면 미국의 견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K-증시도 먹구름이다.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는 수출 기업이 많은 한국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전망이다. 6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3.37포인트(0.52%) 내린 2563.51로 거래를 마쳤다. 트럼프 당선 시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에서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등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경계감이 유입됐다.

특히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의 태양광 및 전기차 정책 추진과 결별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우려가 한국 증시 급락으로 이어졌는데 LG에너지솔루션은 약 7% 하락했고 다른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도 주가가 떨어졌다.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한화솔루션도 8% 이상 급락했다. 관세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차도 3% 이상 하락했다.

반면 ‘미장’은 화려한 성적이 예상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트럼프의 승리와 공화당이 상·하원을 싹쓸이하면 S&P500 지수가 3%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에는 트럼프 수혜주로 대표되는 테슬라가 있다.

트럼프는 6일 승리 연설문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특히 ‘일론 머스크’를 언급했을 정도다. 그는 “머스크 같은 천재들이 미국에 있어 우리는 독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이런 위대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며 이들의 지혜와 혁신 덕분에 우리는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생성형 AI에 힘입어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미 증시의 나홀로 강세가 현재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관세 및 무역분쟁 확대 가능성 등은 수출과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증시에 부담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5년 자산배분의 핵심은 ‘미국 주식과 채권’이라고 강조했다.

NH투자증권의 조연주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보편 관세 시행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관련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한국 주식시장은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올해 주가가 많이 올랐던 업종에 대한 차익실현 심리가 강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주식시장의 투자 기회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고유의 강점이 부각될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 K-엔터테인먼트 업종(제약·바이오, 엔터)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체 자산에서는 비트코인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가 ‘비트코인 대통령’을 자처했듯이 당선이 확실시된 6일 비트코인 가격은 9% 급등한 7만5000달러를 돌파하며 지난 3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트럼프는 미국을 “지구의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암호화폐 현물 ETF 상장에 소극적인 ‘반비트코인파’로 알려진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해고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나의 취임 첫날 암호화폐에 반대하는 십자군전쟁과 디지털 자산에 반대하는 박해와 무기화는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트윗 한마디에…되살아난 ‘트의 공포’
“트럼프 당선에 잊혔던 과거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의 트윗 하나에 모든 전망이 다 바뀌어버린 아찔한 경험….”

여의도 전략 애널리스트 A 씨는 트럼프의 당선이 벌써 피로하다. 자본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로 불리는 2017~2020 재임 기간 자본시장은 그의 예측 불가능한 발언과 정책 변화로 인해 상당한 불확실성을 경험했다.

특히 트럼프의 트위터(현 X) 활동은 시장 변동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트럼프와 트위터의 앞글자를 딴 ‘트의 공포’란 신조어도 생겼을 정도다. 2019년 5월 7일 코스피가 19.33포인트, 코스닥이 8.37포인트 급락하며 국내 증시가 바닥을 쳤을 때 투심을 주도한 건 트럼프의 트윗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의 계정에 ‘지난 10개월 동안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10%를 부과해왔다. 금요일(10일)부터 10%가 25%로 오를 것’이라고 적었다. 이날 트럼프의 폭탄 발언에 중국 지수가 폭락한 것은 물론 한국도 큰 폭의 하락을 경험했다.

2018년 크리스마스의 악몽도 그의 트윗 한마디에서 나왔다. 12월 24일 ‘우리 경제의 유일한 문제는 미국 중앙은행(Fed)’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는데, 그가 제롬 파월 Fed 의장을 해임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3%가량 급락했다.

한 기업의 주가를 좌우하는 것도 그의 트윗 한마디였다. 2018년 4월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연일 공격해 주가를 5% 넘게 끌어내렸다. 당시 트럼프는 ‘어리석은 사람들만 미국 우체국이 아마존과의 사업으로 이익을 낸다고 말한다. 미 우체국은 엄청난 부를 잃고 있고 수많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전국 곳곳에서 문을 닫고 있다’고 썼다.

미 언론은 트럼프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그가 소유한 언론사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권력자의 한마디에 기업의 주가가 출렁이고 투자자들은 피해를 봐야 했다.

트럼프 노이즈는 다시 온 트럼프 시대에도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전망이다. 전략 애널리스트들은 이에 대비하는 방법으로 리스크 관리와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가장 쉬운 첫 단계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안전자산 비중 확대다. 주식, 채권, 원자재, 금 등 여러 자산에 투자해 특정 시장의 충격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불안정한 시기에 금과 미국 국채의 수익률이 높아진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변동성(VIX) 지수를 활용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트럼프의 트윗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높아졌던 2018년과 2019년에 VIX 지수가 상승한 시기에는 변동성 ETF나 옵션을 통한 헤지 전략이 투자자들에게 방어적 수익률을 제공했다.

현금을 일정 비율 보유하는 것도 유동성을 확보하고 하락장에서 저가 매수 기회를 잡는 데 유리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의 현금 보유량은 트럼프 행정부의 첫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6년 말 약 860억 달러였던 현금 보유액은 2019년 말 약 1280억 달러로 증가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의 재집권을 앞둔 지금 벅셔의 3분기 현금 보유액은 약 3252억 달러로 사상 최대다.

시장은 현재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단기적 반응이 다소 과도하며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공약으로 언급했던 발언들이 실제 투자자들의 우려했던 시나리오로 이어지는지 여부는 미지수여서 앞으로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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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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