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사고 원인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사고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사고 당일 공식 명칭을 지정했지만 해당 명칭이 '낙인 찍기' 등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각 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명칭 사용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항공 관련 국제기구들은 공식적으로는 항공사와 항공편을 넣어 여객기 사고를 분류해왔기 때문에 이번 사고 또한 원칙적으로는 '제주항공 2216편 사고'로 불러야한다. 하지만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명칭이 제각각 달라지고 있다.
명칭은 그 자체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무안’이라는 지명이 부각된 사고 명칭에 대해 커뮤니티 게시글, 유튜브 영상, 기사 댓글 등에서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사례가 나타났다. 일부 댓글에서는 "전라도 사람들이 공항 관리를 잘못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식의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대로, 사고를 ‘제주항공 사고’로 명명한 기사나 게시글에는 "앞으로 제주항공은 절대 안탄다", "당장 비행허가 취소해라"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지며 지나친 낙인찍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은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사고 장소가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공포가 커질 수 있다"며 "사고 지명을 제외한 '10.29 참사' 등의 명칭이 트라우마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도 공식적인 명칭과 다르게 사고의 명칭이 불리는 경우가 있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테러를 '9.11 테러'로 명칭하는게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뉴욕 테러', 세계무역센터 테러', '쌍둥이 빌딩 테러' 등으로 표현됐지만 이후에는 지명과 장소를 빼 불리고 있다. 사고 장소를 언급하는 게 피해자와 방문자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는 지적에서다.
사고 명칭에 '참사'를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지역명은 사고 현장을 지칭하는 데 필요할 수 있지만, '참사'라는 단어는 국가적 지원과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국제트라우마스트레스 학회 이사인 현진희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고는 개인적 불행의 성격이 강하지만, 참사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포함한다"며 "제주항공 사고는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 사회적 재난이기에 '참사'로 명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많은 전문가가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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