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경남 창원의 LG전자 1차 협력사 사이언스에서 본 사출 공장은 대기업의 첨단 스마트 공장을 연상하게 했다. 대형버스 한 대 크기의 사출기 12대에선 길이가 2m는 족히 되는 스타일러의 플라스틱 본체가 쉴 새 없이 찍혀 나왔다. 본체는 로봇 팔을 통해 컨베이어벨트에 옮겨졌다. 하루 3000개 이상의 제품 사출이 가능한 이 공정의 담당 인력은 엔지니어 세 명뿐이다. 불량률은 0.001%대로, ‘제로’ 수준이다.
한국 제조업을 지탱해온 산업도시의 쇠락 속에서 무너져가는 밸류체인(가치사슬) 경쟁력을 지키려는 기업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사이언스의 혁신은 LG전자의 첨단 ‘인공지능(AI) 자율 제조’ 기술 전수에서 시작됐다. 포스코는 ‘철의 도시’ 경북 포항을 기술 창업의 메카로 조성하기 위해 협력사 기술 개발에 1조원을 투자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창원에 고용인원 300명 규모의 신공장을 설립한 사이언스 등 협력사들이 LG전자를 따라 창원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협력사 단계부터 생산성이 높아지자 본체인 LG전자 공장의 생산성도 따라 올라갔다. LG전자의 이런 혁신은 창원시 경제에도 보탬이 됐다. 2021년 50조원이던 창원 내 산업단지 생산액은 2023년 63조8000억원으로 2년간 2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3.9%에서 2.3%로 하락했다. 정태영 사이언스 대표는 “원청 기업의 지원이 없었다면 창원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에선 포스코가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포스코는 포항에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2019년부터 다수의 벤처펀드에 총 1조원을 출자했다. 2021년엔 포스텍에 대학생, 교수, 기업인의 창업을 지원하는 ‘체인지업 그라운드’를 개관했다. 웬만한 대학에 있는 창업 공간과 이곳의 차이는 ‘스케일업’과 ‘양산’ 지원이다.

박성진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철이란 소재에 머물러 있던 포항의 산업 생태계가 첨단, 바이오 소재로 다변화하고 있다”며 “일자리를 찾아 모든 청년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지금 1200명의 고급 인재를 포항으로 오게 한 것은 고무적인 성과”라고 말했다.
지방 산업도시의 밸류체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국내 기업들에도 당면 과제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산업의 성장과 사업 재편을 막는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혁신을 촉진할 투자 마중물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2027년까지 200개 사업장을 AI가 적용된 스마트팩토리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정부가 추진하는 ‘AI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자금은 총 3조7000억원에 달한다.
창원·포항=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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