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테네시주 클라크스빌에 자리잡은 LG전자 가전공장 뒤편에는 축구장 크기 100배가 넘는 큰 공터가 있다. 세탁기 연 120만 대, 건조기 60만 대, 워시타워(세탁·건조기) 35만 대를 생산하는 현 공장을 4개 더 지을 수 있는 땅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LG전자는 평탄화 작업을 마친 이 공터에 TV 공장과 세탁기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관세를 물리고, 멕시코산 제품에는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지금 상황은 7년 전과 비슷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무차별적인 ‘관세 폭탄’을 예고해서다. 이렇게 되면 2020년 7월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노리고 멕시코 생산 거점을 확대한 삼성과 LG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전자업체 고위 관계자는 “한국 기업 점유율이 높은 냉장고와 TV 등이 ‘관세 폭탄’의 1차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가장 원하는 건 미주 생산거점으로 구축해놓은 멕시코산에 무관세가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도 마련했다. LG는 테네시 공장 증설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은 멕시코산에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에 대비해 최근 멕시코 냉장고 생산 물량 일부를 광주공장으로 가져왔다.
가전업체 고위 관계자는 “세계 양대 시장 가운데 중국은 이미 하이얼, 샤오미, TCL 등 현지 기업에 넘겨준 걸 감안할 때 미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며 “2018년 세이프가드 때 발 빠르게 대응한 그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투자 확대가 한국 가전기업에 또 다른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미국 고객이 원할 때 바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순발력’이 생기는 만큼 시장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 테네시 공장 관계자는 “현지 생산을 늘린 덕분에 미국 세탁기와 건조기 시장 1위(지난해 3분기 기준)가 될 수 있었다”며 “해외에서 생산할 때보다 제품 공급 기간을 4분의 1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동남아시아보다 5~6배 높은 인건비는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LG는 자동화율을 높여 인건비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클라크스빌=김진원/황정수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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