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리히텐슈타인에서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을 연주했는데, 무려 3시간(인터미션 포함)이나 걸리더라고요. 마지막 곡을 연주할 즈음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어요(웃음). 그런데 피곤하기보단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마치 라벨의 음악 세계를 관객과 공유하고, 저 또한 완전히 그 세계에 빠져들어간 것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20일 화상으로 만난 피아니스트 조성진(31·사진)은 “라벨은 모차르트나 베토벤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기진 않았지만, 음악 하나하나가 전부 주옥같은 작곡가”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작곡가의 모든 작품을 연주하거나 녹음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라벨을 공부하면서 이 작곡가가 얼마나 천재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체류 중인 조성진은 “인상주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드뷔시와 라벨 음악을 혼동할 수 있는데, 이번 앨범에선 두 작곡가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드뷔시가 로맨틱하고 자유롭다면, 라벨은 지적이고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하다”며 “이 앨범을 통해 많은 청중이 라벨의 음악 세계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조성진은 피아노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꼽히는 라벨의 ‘스카르보’를 중학교 때부터 연주했다고 했다. “그전까진 베토벤, 쇼팽, 리스트의 작품을 연주했는데, 라벨을 처음 접했을 땐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테크닉이 어렵고 음표가 많았지만, 나이 때문이었는지 오히려 더 신나기도 했었죠. 벼락치기 공부가 아니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공부한 음악이기에 그만큼 더 깊이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올해는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지난 10년간의 음악적 발전에 대해 평가해달란 질문에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며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끝으로 조성진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라벨 같은 인물과 비교하면 전 그저 평범한 연주자에 불과해요. (다만) 피아니스트는 굉장히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천재들의 음악 세계와 정신 세계를 원 없이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앞으로도 연주자로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싶어요(웃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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