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달러 환율이 많이 상승했다. 미국 달러는 최근 다른 통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여 놀라운 현상은 아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2000원에 근접했던 걸 기억하는 우리 국민은 환율 급등이 외환위기의 전조는 아닐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계엄령과 연이은 탄핵으로 야기된 국내 정치 혼란은 이러한 걱정을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이다.그러나 외환위기의 근본적 원인과 이와 함께 나타나는 현상을 살펴보면 외환위기는 현시점에서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 같다. 근본적으로 외환위기는 외국으로부터 빌린 자금이 갚기 어려울 만큼 많을 때 주로 발생하고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는 이에 수반하는 현상이다. 외국에 진 빚이 과다하지 않으면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대외 금융부채는 대외 금융자산보다 780억달러 정도 많았다. 주로 기업들의 해외 차입이 대외 금융부채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3분기에는 거꾸로 한국의 대외 금융자산이 대외 금융부채보다 9770억달러 정도 많았다. 한국 1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 되는 큰 액수다. 따라서 외환위기의 주요 전제 조건인 과도한 해외 부채는 현재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외환보유액 규모도 차이가 난다. 1997년 11월 한국 외환보유액은 당시 GDP의 4% 정도인 244억달러에 불과했다. 작년 12월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6억달러로 GDP의 20%가 넘고 최근 이렇다 할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간 국내총생산이 세 배 정도 증가했지만, 외환보유액은 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국제 비교를 해봐도 GDP 대비 외환보유액이 적은 편이 아니다. 외환보유액이 적어서 환율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따라서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우가 아닌가 싶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 정도를 보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시점인 1997년 12월 3일 이전 3개월간 원·달러 환율은 32% 급등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일인 12월 14일 이전 3개월 동안 원·달러 환율은 9% 오르는 데 그쳤고, 그 이후 다소 상승했을 뿐이다. 더구나 요즘의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국 증시 활황, 트럼프 신정부의 관세 정책, 최근 국내 정치 상황 등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취약해서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고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발생한 뚜렷한 현상은 경상수지 적자다. 원·달러 환율은 원론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만약 미국 달러가 국내에 적게 유입되면 달러 가치가 오른다. 1997년 당시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 순유입이 끊기고 과다한 해외 채무로 해외 차입이 불가능해지자 원·달러 환율은 급격히 상승했고 결국 IMF로부터의 외화 차입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지금 상황은 다르다. 지난 한 해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해 1997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외환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이유다.
만약 한국 경제가 취약해서 외환위기가 날 정도라면 해외 금융자본이 한국을 떠나야 한다. 국내 채권을 보유한 외국인이 원금과 이자의 지급불능을 걱정한다면 채권을 매도하려 할 것이고 동시에 채권 가격 하락과 이자율 상승이 올 것이다. 그러나 우선 외국인 채권 매입·매도 현황을 살피면 채권 총액 대비 외국인 보유 비중이 작년 내내 10% 내외로 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12월 3일 계엄령 사태 이후 뚜렷한 변화는 없다. 한국 주가가 작년에 부진했지만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외국인 보유 비중도 각각 32%, 1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국 경제의 ‘나 홀로 순항’ 등에 기인하며 우리의 관리 범위 밖으로 보인다. 높은 원·달러 환율을 당분간 상수로 생각하고 부진한 내수경기를 어떻게 진작할지 생각할 때다. 현재 정치 상황이 혼미하고 대미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은 더 커졌다. 경기가 진작되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오르고 원·달러 환율도 다소 진정돼 근거 없는 외환위기 걱정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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