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목사'라 칭하며 텔레그램에서 수백 명의 남녀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직접 강간까지 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2020년 N번방·박사방 사건에 비해 대상이 더욱 다양해졌으며, 범행 수법이 무차별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총책 외에도 범행에 가담한 조직원 전원이 검거됐으며, 조직에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공한 피의자들도 붙잡혔다.A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해 텔레그램으로 유인했다. X(옛 트위터) 등에서 지인 딥페이크 합성물 제작·유포에 관심을 보인 남성들에게 '지인 능욕방에 가입시켜 주겠다'며 접근했다. 또 온라인에서 성적 호기심 등을 표현한 여성들에게 접근해 "당신의 사진이 유포될 것 같으니 방 관리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며 텔레그램으로 유인했다.

A씨는 이렇게 유인한 피해자들에게 '연락처를 추가해 달라'고 말하며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연락처 추가하기' 버튼을 누르면 서로의 전화번호가 공개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을 파악하고 이름, 나이, 소속 등 신상정보를 확보했다. 이후 이 정보를 빌미로 남성들에겐 “딥페이크 제작 시도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여성들에게는 “신상정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성착취를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여성 피해자 10명을 직접 강간하고 촬영까지 했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남자와 성관계를 해야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자신이 정해준 ‘오프남’을 만나도록 지시했는데, 이 ‘오프남’은 실제론 A씨 본인이었다. A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미성년자 10명을 전국 각지에서 성폭행하고 촬영했다.
A씨는 '말을 듣지 않는다'며 조직원들 간의 성폭력을 지시하기도 했다. 남성 조직원이 여성 조직원을, 혹은 그 반대로 서로 강간하거나 구타하도록 하는 등 학대를 서슴지 않았다.
협박을 뿌리치고 지시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관리하는 단체방에 '박제'했다. 피해자의 신상과 나체 사진,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하려고 했다는 사실 등을 텔레그램 단체방에 공개적으로 게시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과거 유사 사건에 비해 피해자 규모도 커졌고, 범행 기간도 길었다. '박사방'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73명, 범행 기간은 1년인 데 비해 '자경단' 사건은 총 4년 6개월 동안 234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경찰 관계자는 "N번방과 박사방은 여성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반면 자경단은 성별과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했다.
성착취 피해자 138명 중 남성은 84명, 여성은 54명이었다. 이들 중 10대 미성년자는 103명에 달했다. 허위영상물 피해자는 96명 전원 여성으로, 이중 56명이 10대였다. 이번 사건으로 제작된 성착취물은 1404개, 딥페이크 영상물은 142개에 달한다. 경찰은 유포된 영상물에 대해 삭제 및 차단 조치를 진행 중이다.
조직은 ‘목사→집사→전도사→예비전도사’로 계급을 나누고 상명하복 체계를 구축했다. 예비전도사가 새로운 피해자를 데려오면 전도사로 승급하고, 전도사가 피해자 10명을 데려오면 집사로 승급하는 체계다. 경찰은 이같은 조직 체계가 다단계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자경단 조직원 14명 중 11명은 10대로, 가장 어린 조직원은 만 15세 중학생이었다. 이 외에 고등학생 6명, 대학생 6명, 회사원 1명, 무직 2명이 포함됐다. 성별로는 남성 13명, 여성 1명이었다.

A씨는 '절대 안 잡힌다'고 호언장담하며 경찰 수사를 비웃었다. 텔레그램에서 "우리 사이버수사과 아재들 저 잡을 수 있어요?", "수사하러 헛고생 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라고 말하는 등 절대 잡히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A씨는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지난 15일 경기 성남시 소재 거주지에서 체포돼 17일 구속됐다. 체포 후 그는 “성적 욕망 충족을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범행하며 얻은 금전적 이익은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가혹행위에 대해선 “내 통제와 지시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고 했다.
A씨는 '목사' 등 종교적인 명칭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로 "드라마 '수리남'을 보고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드라마에서 마약 조직 총책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이 목사로 신분을 위장하는데, 이를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A씨가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만큼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정신감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A씨에 대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는 지난 22일 열렸고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텔레그램으로부터 범죄 자료를 회신받은 최초 사례다. 서울경찰청은 협조에 소극적이던 텔레그램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작년 9월 24일 해당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았다.
이를 계기로 경찰청은 작년 10월부터 텔레그램과 수사 협조 체제를 공식적으로 구축했다. 이 협력 체제를 통해 마약, 리딩방, 사이버 성폭력 등 텔레그램 기반의 각종 범죄 수사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오규식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2대장은 “A씨는 평소 수사 기법을 연구하며 자신이 절대 검거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으나 결국 붙잡혔다”며 “사이버 성폭력 범죄는 반드시 검거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딥페이크 합성물을 제작하려던 가해자가 범죄의 표적이 되어 더 큰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다”며 “신상 공개 협박을 당했을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즉시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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