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그동안 AI 모델 분야에서 미국에 2~3년은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성능 AI칩의 대중 수출 통제와 중국인 연구자의 미국 내 비자 발급 제한 등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이 같은 격차의 근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딥시크의 등장은 그간의 통념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AI 개발자들 사이에선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중관춘과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기술 시차를 물어보면 ‘16시간’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한다”며 “글로벌 AI 연구의 개방성이 높아져 실제적인 기술 격차는 거의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픈AI, 메타 등 미국 빅테크들이 긴장 모드로 전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모방을 통해서 빠르게 추격한 뒤 가성비와 인해전술로 판도를 단숨에 뒤집어버리는 중국식 전략이 이번에도 적중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함께 벌이는 딥시크 조사도 베끼기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픈AI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했는지 가리겠다는 것이다. 오픈AI 측은 딥시크가 낮은 비용으로 챗GPT에 맞먹는 성능의 모델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오픈AI의 데이터를 도용한 데 따른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AI정책총괄로 임명된 데이비드 색스는 “딥시크가 오픈AI 모델에서 지식을 증류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증류’는 더 큰 모델의 출력을 사용해 더 작은 모델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뜻한다. 오픈AI는 증류 기술로 합성 데이터를 만들어 모델을 학습시키는 스타트업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강제로 막지는 않았다.
오픈소스에 기반한 고성능 AI 기술이 최종적으로 검증된다면 중국은 전 세계 개발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기술과 데이터가 모이는 AI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AI 모델 저장소인 허깅페이스에서 중국의 AI 모델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온 스토이카 UC버클리 교수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모델 성능과 폐쇄적 구조로 경쟁력을 확보했다면 중국은 오픈소스와 공격적인 가격 책정으로 생태계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개발자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에서도 중국발 가격 인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선 이번 딥시크의 발표가 글로벌 자금을 중국으로 되돌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딥시크가 R1을 공개한 후 엔비디아 등 뉴욕증시의 기술주 시가총액은 1조달러(약 1443조원)가량 증발했다. 미국이 대규모 자본 투자만으로 중국을 따돌리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트럼프 정부의 AI 정책 역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류즈위안 칭화대 교수는 “중국 AI가 미국을 이미 넘어섰다는 식의 말이 많아지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쫓아가는 단계에 있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일각에선 딥시크의 비용 대비 성능이 마케팅을 위해 과장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고은이/김주완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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