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주민 220만 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를 미국이 직접 점령해 소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당장 주민을 인근 국가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은 ‘인종 청소’라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비공개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가자지구를 넘겨받아 이곳에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곳을 소유하고, 위험한 불발탄과 다른 무기를 모두 해체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가자지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군 배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가자지구는 서안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중 한 곳이다. 면적은 365㎢로 서울시의 60% 정도 크기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이 점령했지만 2005년 평화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정착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2006년 무장정파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하자 이스라엘이 전면 봉쇄하며 양측의 긴장이 고조됐고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빌미가 됐다. 최근 타결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에서도 가자지구 재건과 통제권 문제가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구상은 가자지구 주민을 인근 지역으로 영구히 옮기자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가자에서는 죽음만이 반복됐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총격, 칼부림, 폭격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을 찾는 게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순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국으로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한다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두 국가 해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의 가자 주민 강제 이주와 재점령 계획은 아랍권과 유대인의 공존을 표방해 온 미국의 원칙을 자발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중동의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에 역행하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를 견제하며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를 중재해 왔다. 사우디는 이스라엘 수교 조건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방안을 내걸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이후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도 지난 1일 공동성명에서 “팔레스타인인이 자신들의 땅에 살면서 재건을 도와야 한다”는 서한을 미국에 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 국가들의 맹렬한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며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입지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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