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할 때 교통방송을 듣는 버릇이 든 지 오래됐다. 통신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언제 들어도 신뢰를 넘어 정겹기까지 하다. 아버지는 “교통뉴스야말로 한 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않아도 될 만큼 정확하다”라고 평가했다. 아버지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내가 운전해 모시고 갈 때 들었던 말씀이다. MBC가 교통방송을 시작한 1993년이었다. 청계고가를 내려 종로예식장으로 갈 요량으로 길에 들어섰으나 답십리부터 정체했다. 방송은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짜증 나서 라디오를 꺼버리고 아는 샛길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길은 더 움직이질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라디오를 켜라고 했다. 라디오는 우리 사정을 본 듯 “샛길까지 모두 정체가 심하다. 종로 큰길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길을 안내했다. 교통 통신원이 전하는 정체 상황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평소 주말보다 오늘 교통량이 많습니다. 긴 정체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차와의 안전거리 충분히 확보해야겠습니다. 정체가 시작된 신설동에서 광화문까지 1시간 넘게 시간 넉넉히 잡으셔야 하겠습니다. 동대문까지 3㎞ 구간에서 특히 제 속도 내기 어렵습니다. 차량 흐름이 좋지 않아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동대문 앞에는 사고가 나 1차로가 막혀있어서 차선변경 잘하셔야겠고요. 그 여파로 종로 진입 차량 병목현상으로 서행하고 있습니다.’
‘막힌다. 정체된다, 밀린다, 주춤한다, 차들이 줄지어 지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차간거리 좁혀 지난다, 신호 두 번 받아도 지나가기 어렵다’ 등 똑같이 차가 막히는 상황이어도 느낌이 다른 표현들을 라디오가 쏟아냈다. 정체 표현의 다양성과 파생어가 듣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큰길로 나가라. 그 친구 참, 말 잘한다. 일은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통신원을 칭찬한 아버지는 예식장 도착 때까지 말씀을 계속했다. 그 통신원이 길만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삶의 지혜를 알려준다며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 탁상에서 만든 계획은 현장에 보내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긴다”고 확대해석했다. 이어 “정보가 생명이다. 매사가 그렇다. 듣는 거 보다 가보는 게 훨씬 낫다”며 “네가 샛길 들어서서 보지 않았느냐? 네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고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라고 질책했다.
간신히 샛길을 빠져나와 종로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한자를 파자해가며 설명했다. ‘돌아보다’란 뜻의 ‘고(顧)’자는 ‘집 호(戶)’와 ‘새 추(?)’자가 결합한 ‘뻐꾸기 호(雇)’자다. ‘머리 혈(頁)’자가 붙었으니 ‘뻐꾸기 머리’란 뜻이다. “뻐꾸기는 제 둥지를 짓지 않고 자기가 낳은 알을 남의 둥지에 놓아둔다. 그게 ‘탁란(托卵)’이다. 다른 알이 먼저 부화해 자기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낼까봐 암컷이 ‘뻐꾹 뻐꾹’ 소리내 울면서 둥지를 맴돈다. 그렇게 지킨 자기 새끼가 부화하면 다른 종이 낳은 알을 밀어 떨어뜨린다”고 했다.
이어 “‘고객(顧客)’도 마찬가지다. 손님을 그렇게 자기 가족처럼 돌아보고 지킨다는 뜻이다. 교통 통신원이 자기 가족이 운전하는 것처럼 운전자를 생각하기 때문에 짜증 나는 정체를 저렇게 다양하게 표현해 순화한 것이다”라며 본받으라고 했다. 분가할 때 장만한 뻐꾸기시계를 떠올린 아버지는 “그 시계는 암컷이 제 새끼를 지키려는 절박함 속에서 연유한 정확성을 차용한 상품이다”라고 일러줬다.
아버지는 특히 통신원이 정체를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모두 다른 말로 바꿔쓰는 노력에 주목하라 했다. “통신원의 노력이 새롭다.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세상의 거의 모든 갈등을 해결해낼 수 있다. 저런 마음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자연스럽게 배려심을 키울 수 있다”라고 치켜세웠다. 명심하라며 아버지는 “정체 때문에 짜증 나 있는 운전자들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 데서 저런 마음이 나온 거다. 더 들여다보면 ‘저 사람도 나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다. 그래야 진심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라고 했다.
예식장엔 늦었다. 아버지는 인사만 하고 오셨다. 길에다 세우고 기다리던 차에 올라탄 아버지가 인용한 고사성어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했다. ‘처지를 바꾸더라도 모두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입장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원문에 나오는 고사다. 우임금과 후직은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안회는 혼란스런 세상을 만나 볼품없는 마을에 살면서 소쿠리 밥을 먹고 표주박 물을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건만, 안회는 즐거워했다. 공자는 셋을 어질다고 했다. 우임금은 물에 빠지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를 잘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고, 후직은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기의 잘못으로 굶주린다고 생각했다. “우임금, 후직, 안회는 처지를 바꾸더라도 모두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맹자는 말했다.
공감력은 타고난 기질도 있어야지만, 교육을 통해 충분히 키워지는 능력이다. 인간의 뇌에는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s)’가 있어, 다른 이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 선천적 공감력도 스스로 깨달아 노력하지 않고는 얻어지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 앞에서 역할 연기라도 해가며 가르쳐야 하는 덕성이다. 일찍부터 손주들에게도 물려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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