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내 명품 바이어가 최근 명품 브랜드 구찌에 내린 평가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이지만 이제는 위상이 크게 추락해 인기가 높던 중국 시장에서조차 외면받는다.
구찌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 경기 침체에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에르메스 등 경쟁 브랜드의 실적이 최근 반등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구찌는 작년 4분기에만 매출이 20% 이상 줄었다. 특유의 화려한 디자인을 버리고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를 좇다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찌 실적은 다른 명품 기업과 대비된다. 세계 최대 명품 기업 LVMH의 작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 늘어난 239억3000만유로였다. 4분기 매출이 미국에서 3%, 유럽에서 4% 등 안정적으로 증가하면서 중국 시장 부진을 상쇄했다. 에르메스는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에르메스의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7% 늘어난 39억6000만유로를 기록해 월가 추산치를 크게 웃돌았다. 에르메스의 핵심인 명품 가방 등 가죽 제품이 전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구찌가 ‘나 홀로 부진’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게 주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선 구찌의 중국 매출 비중을 35% 수준으로 추산한다. LVMH, 에르메스가 25% 수준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구찌는 시끄러운 패션을 내세워 과시 성향이 강한 중국에서 큰 폭으로 성장했는데 최근 조용한 럭셔리 유행을 무리하게 좇아 큰 타격을 입었다”며 “매스티지로 브랜드 위상이 추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했다.
구찌는 CD에 따라 브랜드 위상이 크게 바뀌었다. 1995년부터 10년간 구찌 CD를 맡은 톰 포드가 대표적 사례다. 톰 포드는 1990년대 초 창업자 구찌 가문 내 갈등과 과다한 라이선스 생산으로 추락한 구찌의 CD를 맡아 부활을 이끌었다. ‘글래머러스’ ‘에로티시즘’ 요소를 디자인에 적극 반영하고, 라이선스 생산도 크게 줄였다. 포드가 CD를 맡은 기간 구찌 매출은 5억유로에서 27억유로로 여섯 배 가까이 늘었다.
2004년 포드가 떠나고 구찌는 다시 부진에 빠졌다. 반등이 시작된 건 2015년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새 CD로 발탁하면서다. 미켈레는 구찌 ‘제2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우아하고 고상한 명품 이미지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색 조합에 동물과 곤충, 꽃이 잔뜩 등장하는 강렬한 제품을 선보였다. 개성 있는 디자인에 젊은 층이 열광했다.
미켈레의 뒤를 이은 데 사르노는 미니멀리즘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100억유로를 넘기던 연매출은 작년 76억5000만유로로 쪼그라들었다. 데 사르노가 구찌와 결별했지만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케링은 작년 여름부터 대안을 모색했다”며 “LVMH 산하 로에베의 CD인 조너선 앤더슨 등과 접촉했지만, 앤더슨은 구찌의 제안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고 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업계에선 CD에 따라 브랜드 위상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명성 있는 외부 CD 영입보다 내부 CD 육성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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