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자동차에 관세를 물리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도 얘기했고 당선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예고했다.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나온 새로운 팩트는 관세율이다. 모두 보편관세(10%) 수준에서 책정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보다 훨씬 높은 25%로 못 박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해온 자동차에 이렇게 높은 관세가 붙으면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차량과 가격 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 “한국 자동차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관세 폭탄이 현실이 되면 국내 자동차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자동차(63만 대)와 기아(38만 대), 한국GM(42만 대) 등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차량은 모두 143만 대다. 전체 자동차 수출 물량(279만 대)의 절반 이상이 미국으로 향했다. 자동차는 한국 대미 수출액의 27.2%(347억달러·약 50조원)를 차지하는 1등 품목이다.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산술적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차량 가격은 관세율만큼 인상 요인이 생긴다. 이런 식이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투싼의 미국 판매가격은 2만8605달러(약 4118만원)부터다. 여기에 25% 관세가 붙으면 대략 5000달러(약 720만원)를 미국 정부에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현대차가 관세 부담을 100% 가격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떠넘기기는 어려운 터. 차값 인상폭을 최소화하는 대신 이익을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관세 20%를 적용하면 현대차·기아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최대 19%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법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을 짰다. 올해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생산능력을 연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 생산을 늘리면 국내 생산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데 있다. 작년 69만 대 수준이던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생산량이 120만 대가 되면 국내 생산 물량은 50만 대 가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 차 부품·소재 협력사 등 자동차 생태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체는 한국GM이다. 국내 생산 물량의 84%를 미국으로 수출하기 때문이다. 미국 본사가 관세를 피해 한국GM 생산 물량을 미국 공장으로 돌리면 문을 닫아야 할 운명에 내몰릴 수도 있다.
수입차 고율 관세 부과가 미국 내 차값 상승과 자동차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투자분석회사 울프리서치는 앞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으로 미국의 차량 소비자가격이 평균 3000달러(약 430만원)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가 부과돼 원자재 비용이 늘어나면 GM과 포드 등 미국 완성차업체도 수익성이 떨어진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1년에 팔리는 자동차 1600만 대 중 현지 생산 물량은 800만 대에 불과하다”며 “고율 관세를 붙이면 미국 소비자가 부담을 떠안을 것”이라고 했다.
김보형/신정은/김대훈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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