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빚은 와인 한 잔은 미각으로 감상하는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는다. 본질적으로 럭셔리 소비재란 뜻이다. 글로벌 미술품 옥션 양대 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경매를 열 때마다 블루칩 작가들의 회화와 함께 ‘억’ 소리 나는 초고가 와인을 선보이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전 세계를 강타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로 소비시장이 휘청이고 있다는 것. 와인과 주류산업은 천국과 지옥 어느 쪽을 향하고 있을까.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로돌프 라메즈 비넥스포지엄 대표(사진)는 “힘든 시기지만 사람들은 마시게 될 것”이라며 시장 반등에 베팅했다. 비넥스포지엄은 와인 파리 주최사로 미국 마이애미, 인도 뭄바이,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서 주류 관련 시리즈 박람회를 열고 있다.
▷파리가 예술과 패션, 그리고 와인의 도시가 됐습니다.
“정확해요. 수많은 사람이 와인을 보고 시음하며 즐거워하고 있어요.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아 긍정적인 기폭제가 필요했는데, 와인 파리가 그 역할을 하고 있죠.”
▷지난 행사와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전시 공간은 25% 늘었고 방문객은 30% 증가했어요. 규모만 커진 게 아닙니다. 알코올 함량이 낮거나 아예 없는 와인을 선보이는 신생 기업도 늘었어요. 시대 변화에 맞춘 질적 변화인 것이죠.”
▷미국 나파밸리, 라틴아메리카 등 신세계 와이너리의 참여가 늘었습니다.
“나파밸리와 중남미 지역에선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말벡 등 구대륙 와인과 같은 포도 품종을 사용하지만 맛과 특성은 확연히 달라요. 혁신도 나타나고 있죠.”
▷구체적으로 어떤 혁신인가요.
“예를 들면 인공지능(AI) 와인 도우미죠. 수백만 개의 와인 리뷰를 분석해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는 기술입니다. (호주의) ‘19 크라임’이라는 브랜드는 인터랙티브 라벨을 도입했어요. 라벨만 스캔하면 와인의 역사와 시각 정보를 받습니다.”
▷지금 와인 및 주류 시장 상황은 어떤가요?
“작년은 도전적인 해였습니다. 글로벌 와인 시장은 전년 대비 4% 역성장했어요. 중국 시장은 20% 줄었죠. 호주는 예외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컬렉터가 지갑을 닫아 미술시장이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프리미엄과 초고가 와인도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나요?
“조금 결이 달라요. 그림은 고정 자산이지만 와인은 마시기 위해 생산됐으니까요. 영원히 보관하는 게 아니라 개봉해서 나누는 제품입니다. 수집보단 소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고소득층은 경기와 상관없이 와인을 구매해요.”
▷논(Non)알코올 와인의 성장세가 인상적입니다.
“논알코올 와인은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하는 교두보입니다. 와인을 잘 모르는 새로운 세대는 관심을 가질 만하죠. 중요한 건 논알코올 와인이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카테고리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올 한 해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지만 일단 해소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술을 즐기게 될 겁니다.”
파리=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