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발 관세 전쟁과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 자동차업계의 성장으로 글로벌 자동차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말했다. 날짜도 “4월 2일 발표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보편관세(10%) 수준에서 관세를 책정할 것으로 예상해온 국내 자동차업계엔 비상등이 켜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해온 자동차에 25% 고율 관세가 붙으면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차량과 가격 면에서 경쟁이 어려워진다. 자동차는 대미 수출 1위 품목(347억4400만달러)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170만 대 가운데 59%(101만 대)를 한국에서 생산했다. 한국GM 생산 물량의 84%는 미국행 선박에 실린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법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을 짰다. 올해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생산능력을 연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 생산을 늘리면 국내 생산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데 있다. 작년 69만 대 수준이던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생산량이 120만 대가 되면 국내 생산 물량은 50만 대 가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생산 물량 대부분을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GM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관세율이 높게 책정되면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GM 생산 물량을 미국 공장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GM의 미국 수출 물량은 41만8782대로 전체 생산량(49만9559대)의 83.8%에 달했다. 현대차와 기아에 이어 GM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면 국내 자동차 생산 대수는 90만 대 가까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완성차는 물론 차 부품·소재 협력사 등 자동차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발 자동차 관세가 국내 자동차업계에 끼치는 피해가 1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장한익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5% 관세가 부과되면 지난해 347억달러(약 50조원)였던 대미 자동차 수출은 63억달러(약 9조1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며 “최근 들어 대미 자동차 수출 호조와 환율 변동 등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는 1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고 했다.

볼보 EX30도 가격 300만원 낮춰…침체·고금리 겹쳐 수요는 주춤
BYD는 지난달 한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첫 출시 차종인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토3는 출시 15일 만에 사전 예약 대수가 1800대를 넘었다. 경기 침체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자동차업계는 중국 전기차 공세까지 막아내야 할 처지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 대수는 14만6883대로 2023년보다 9.7% 감소했다. 올 1월 전기차 판매량도 지난해 1월에 비해 6% 줄어든 2378대에 그쳤다.
정부의 보조금 축소도 전기차 수요를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다. 올해 5300만원 이하 전기차 구매 때 보조금은 최대 580만원으로 지난해 최대치(650만원)보다 70만원 줄었다. 전기차 수요 위축에 맞서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 할인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부터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 등 전기차 9개 차종에 대해 기본 차량 가격 할인에 월별 재고 할인까지 더해 차종별로 300만∼500만원을 깎아주고 있다. 기아도 니로 EV와 EV6, EV9 가격을 150만∼250만원 낮춰 판매한다. 지난해 생산된 전기차에는 추가 할인까지 진행한다.
볼보코리아는 지난달 전기차 EX30을 국내에 출시하며 사전 계약 때보다 최대 300만원 안팎 가격을 낮췄다. 스텔란티스코리아도 ‘어벤저’와 ‘e-2008’에 예상 보조금만큼 가격 할인을 제공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유럽과 일본에서 이미 성공한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가 국내 중저가 시장을 파고들 것”이라며 “애프터서비스(AS) 등이 국내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가 변수”라고 말했다.
경기침체 속에 고금리까지 이어지면서 연초부터 자동차 수요는 주춤하는 분위기다. 현대차와 기아, 한국GM,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 등 국내 완성차 5개 사의 지난 1월 국내외 판매량은 전년보다 3.9% 감소한 59만3385대로 집계됐다. 완성차 5개 사의 판매실적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작년 9월 이후 4개월 만이다. 특히 국내 판매가 부진했는데, 완성차 5개 사의 내수 판매는 작년보다 11.9% 줄어든 9만596대에 그쳤다.
해외 시장도 비슷한 분위기다. 현대차의 3월 차종별 생산계획 내부 자료에 따르면 2월 미국 자동차 산업수요는 전년보다 2% 감소한 122만9000대로 추정됐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기준금리 동결 등으로 신차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도 경기 침체 여파로 지난달 신차 수요를 전년보다 7.4% 줄어든 117만 대로 추정했다. 업계에서는 미국발 관세 여파 등으로 올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이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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