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중지한 것은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다. 자유 진영 리더인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3년간 분투해 온 우크라이나를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미국의 종전 구상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려는 조치라고 하지만 미국의 군사 지원이 끊기면 우크라이나 전선의 균형추가 러시아로 급속히 기울 수 있다.
4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공개 충돌한 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익명의 미 국방부 당국자는 이 매체에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을 입증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할 때까지 미국이 제공 중인 모든 군사 원조를 멈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관련 명령을 내렸고, 이 명령은 즉시 시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또 “우크라이나 영토 밖에 있는 모든 미군 장비의 이전도 중단된다”고 했다. 여기에는 항공기와 선박을 통해 운송 중인 무기, 폴란드 환승 구역에서 대기 중인 장비가 포함된다.이번 결정은 지난달 28일 양국 정상이 종전 협상과 관련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정상회담이 조기 종료된 지 사흘 만에 이뤄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관점에서 근본적 시각차를 드러냈다. 두 정상은 설전 끝에 갈등의 골만 확인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쫓겨나듯 백악관을 나와야 했다. 양국 광물협정 체결도 불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지원 중단 지시는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종전협상을 미국 뜻대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에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려면 멀었다”는 젤렌스키 발언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올린 뒤 “내가 말한 대로 이 사람은 미국의 지원이 있는 한 평화(협정)를 원하지 않는다”고 썼다. 마이클 월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문제는 시간이 젤렌스키 편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미국 국민의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으며 우리의 무기와 탄약도 무제한적이지 않다”고 말해 휴전 협정 체결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광물 협정 체결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날 백악관 회견에서 ‘양국 광물협정이 끝장났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일 밤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4일 밤 9시(한국시간 5일 오전 11시) 예정된 미 의회 연설에서 광물협정과 관련한 새로운 발표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기 직접 지원 중단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미국 방위산업체와 계약할 때 대출과 보조금을 제공하는 군사자금 지원도 중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종전협상 중단이 장기화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시간을 활용해 추가 영토 확보에 나설 수 있다”며 “이번 조치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는 푸틴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