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글로벌 반도체기업이 추가 투자를 발표한 건 TSMC가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당장 투자를 늘리기 힘든 두 회사는 워싱턴DC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TSMC는 여기에 1000억달러를 더 들여 파운드리 공장 3개와 최첨단 패키징(여러 칩을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공정) 공장 2개, 연구개발(R&D)센터까지 짓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TSMC의 고향인 대만에 맞먹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메카’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애초 TSMC는 미국 추가 투자에 난색을 보였다. 이런 기조는 “미국의 투자 압박이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분업 질서를 해칠 것”이란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의 발언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걸 돌려세운 게 ‘관세 폭탄’을 앞세운 트럼프의 압박 전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TSMC가 대만에서 생산한 칩을 미국에 보낸다면 25%나 30%, 50% 등 어떤 수치가 됐든지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은 게임에서 훨씬 앞서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반도체 생산 능력을 계속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그는 “TSMC의 투자와 진행 중인 다른 몇 건의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40%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2022년 기준 10%다.
TSMC는 SK하이닉스에서 넘겨받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직접 생산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합쳐 AI 가속기를 만든다. 여러 반도체를 한 몸처럼 움직이도록 하는 게 최첨단 패키징이다. 그런 만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HBM을 만드는 메모리기업도 미국 내 생산기지 추가 건설을 검토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TSMC의 대규모 투자 계획에 한국 반도체기업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과 용인에,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와 용인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어 미국에 공장을 더 짓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반도체 관세 정책이 구체화하고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진정되면 삼성과 SK가 추가 투자를 고민할 것”으로 전망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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