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은 트럼프 1기 정부 이후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어졌고 덕분에 올 1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전까지 동남아 각국은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를 대폭 늘려, 2023년 기준 ASEAN의 대미 흑자는 약 2천억 달러(약 289조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흑자 금액만 놓고 보면 ASEAN 전체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 사정권 안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나라들이 있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 10대 무역 적자국 현황을 보면 우리 한국은 601억 달러로 8위에 올라 있는데 같은 자료에서 10대국 명단에 드는 ASEAN 국가들이 있는 것이다.
현재 ASEAN 국가 중 가장 큰 대미 무역 흑자를 보는 대표적인 두 나라는 태국과 베트남이다. 단일 국가 기준으로, 태국은 2024년 한 해 동안 416억 달러(약 61조원)로 대미 흑자국 10위를 기록했고, 베트남은 한술 더 떠 1,131억 달러(약 165조원)로 대미 흑자국 3위를 기록했다. 베트남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베트남 국내 총생산(GDP)이 4,763억 달러(약 620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흑자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베트남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따른 군사 협력과 글로벌 기업들의 脫중국화로 가장 큰 수혜를 입었지만 바이든 행정부 시절, 다시 중국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면서 최대 대미 흑자를 기록해 '뒤끝' 강한 트럼프에게 몇 배의 보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두 나라는 부랴부랴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각종 고육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먼저 베트남은 보잉사 항공기 구매, LNG 수입 확대, 인공지능(AI)용 반도체 구입 등 미국산 제품 구매를 늘려 흑자를 줄일 계획이다. 태국 정부는 미국산 에탄 수입을 최소 100만t 늘리고 사료용 콩가루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비해 전임 정부부터 친중 정책으로 다소 기울어진 ASEAN 최대국 인도네시아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도네시아는 대미 무역 흑자가 매년 100억 달러 선으로 적은 편인데다 올해 1월 BRICS에 정식으로 가입하며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으로 수출 시장을 확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행보는 BRICS 국가들의 脫달러화 움직임에 대해 100% 관세 부과를 위협하며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고, 이는 작년 7월 BRICS 가입을 신청한 말레이시아와 가입을 고려하고 있는 태국과 베트남에도 부담이다.
이에 대해 아세안 국가들은, 국력 차가 커 감당하기 힘든 미국과의 개별 협상보다는 아세안 공동 대응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모하마드 하산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20일 의회에서 미국의 관세와 관련해 회원국들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과 특별 정상회담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세안과 트럼프 대통령의 다자 회담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들과 1:1 단독 회담을 통해 특유의 저돌적인 벼랑 끝 전술과 미치광이 전략으로 목표 달성하는 것을 선호하며, EU나 ASEAN같이 동시에 여러 나라를 상대해야 하는 다자회담은 기피하기 때문이다.
1기 재임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ASEAN을 철저히 무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SEAN 정상회의 참석 이후에는 계속 불참했고 부통령이나 국무장관도 보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아세안 본부 주재 미국 대사도 임명하지 않았다. 그랬던 트럼프가 복귀해 더욱 강력한 통상 정책으로 ASEAN을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가 ASEAN을 회담 파트너로 인정하고 만나줄 것인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종종 다른 목소리를 쉽게 내던 ASEAN 국가들이지만 트럼프發 관세 전쟁에는 어떻게 공동 대응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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