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가 구치소를 나오는 게 쉽지 않다. 까다로운 구속 적부심을 통과한 일부 피의자만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받는다. 보석 신청은 검찰 기소가 마무리된 뒤 신청할 수 있지만, 수감 기간이 3개월가량 돼야 받아들여지는 것이 보통이다.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가 오랜 기간 인신이 구속된 채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피의자 중 이런 사례가 많다.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시세조종으로 논란이 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이 대표적이다. 검사가 사건의 중대성을 강조하며 구속을 고집하면, 판사가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영장을 발부하는 식이다. 지난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2만7931건이며 이 중 76.9%인 2만1469건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검찰 내부에선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받아내느냐 여부를 실력의 가늠자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구속되지 않은 ‘위험한 피의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도 조건부 석방제도가 보탬이 될 수 있다. 구속영장은 주거가 일정치 않거나 증거 인멸, 도주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만 발부된다. 스토킹 범죄 피의자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자신을 고소한 피해자를 겁박하는 황당한 사건이 심심찮게 터지는 이유다. 조건부 석방제도를 도입하면 영장 판사가 피의자에게 전자장치 부착, 피해자 접근 금지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피의자의 인신 구속을 최소화하면서 피해자도 보호할 수 있는 제3의 선택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일각에선 피의자가 보석금을 맡기고 풀려난다는 점을 들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제도의 본질이 아니다. 보석금은 재판 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다. 미국은 기소 전 보석 제도가 일반화한 나라로, 구속 수사 자체가 많지 않다. 하지만 정식 재판이 끝난 뒤 내려지는 형량은 한국보다 훨씬 무겁다.
법은 엄해야 한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판사가 선고할 때까지는 피의자의 인권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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