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규제 완화 조치로 평가되는 환경규제 개편을 추진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3월 12일(현지 시간) 화학 공장의 안전 기준 및 전력 부문의 오염 규제를 포함해 오바마·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한 12개 이상 규제를 공식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미국 에너지 개발 가속화 계획의 일환이다. EPA는 이를 ‘역사적 조치’로 평가하며 “미국 가정에 수조 달러에 달하는 규제 비용과 숨은 세금을 철폐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리 젤딘 EPA 국장은 “우리는 기후변화 신념의 핵심을 정면으로 겨냥해 미국 가정의 생활비를 낮추고, 미국 에너지를 활성화하며 자동차 산업 일자리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등 다양한 목표를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젤딘 국장의 이번 발표는 앞으로 수년간 진행될 대규모 규제 개편 절차의 시작을 의미한다. 개편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까지는 환경단체의 강력한 법적 대응이 예상된다. 환경보호 단체는 이번 조치가 미국 국민의 건강과 경제적 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 재키 웡 수석 부사장은 “자동차, 발전소, 석유업계의 오염 규제를 철폐하거나 약화하는 것은 전기요금 상승, 천식 및 심장마비 증가, 식수 내 유해 물질 증가, 그리고 극단적 기후 현상의 빈도 증가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위해성 판정 철폐 시도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는 2009년 EPA가 발표한 ‘위해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이다. 해당 판정은 온실가스가 공중보건과 환경에 위협을 초래한다는 법적 근거로 활용되어왔다. EPA의 이번 조치는 석유, 가스, 전력 생산을 방해하는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고 기후변화의 파국적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온실가스배출을 신속히 줄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위해성 판정’ 철폐 시도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것이며, 법적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200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청정대기법(Clean Air Act, CAA)에 따라 EPA가 온실가스를 규제할 권한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2009년 EPA는 온실가스가 공중보건과 환경에 해를 끼친다는 위해성 판정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에너지업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위해성 판정이 철폐되면 석유업체와 발전소 운영자에 대한 소송이 다시금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2010년 연방 대법원은 주정부나 개인이 공공 위해(public nuisance)를 근거로 별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위해성 판정이 철폐될 경우 기존 차단된 공공 위해 소송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바이든 시대 환경규제 철폐 추진
젤딘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여러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발전소의 온실가스배출 제한과 자동차 및 경트럭에 대한 배출 기준이 포함된다. 해당 기준은 자동차 제조업체에 전기차 판매를 사실상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명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으며, 데이터센터 및 제조업 부문의 전력 수요 증가를 충족하기 위해 “수십 개의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집권 당시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폐기하고 개별 발전소 차원의 배출 감축만을 요구하는 완화된 규제를 도입했다. 이번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규제를 개정할 경우 일부 석탄화력발전소 수명이 연장될 수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탄소포집 기술 도입 요구를 회피할 수도 있다.
젤딘 국장은 구체적 시행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모든 개정안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행정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각 규제별로 초안 발표, 공청회, 최종 조치 등이 요구되며, 이는 방대한 작업이 될 전망이다.
화학 및 석유업계 단체는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규모 정책 변화는 기업의 장기적 투자 결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법원에서 뒤집힐 경우, 업계는 다시 이전의 강력한 규제로 복귀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완화가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자동차업체는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보젤라 미국자동차혁신연합(AII) 회장은 EPA의 재검토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의) 자동차 선택권을 보장하고, 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를 지지했다. 앤 브래드버리 미국탐사·생산협회(AXPC) 회장은 “EPA가 규제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국민이 지속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이며 친환경적인 미국산 에너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 및 EPA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아리 내터 · 제니퍼 A. 돌루히 블룸버그 기자
번역 이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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