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을 46년간 장기 통치한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한 소식이 들려온 1994년 7월 전 세계 외교가는 그야말로 대혼란이 일었다. 한국을 포함해 각국 외교 당국은 김일성의 사망 원인부터 권력 승계 구도, 북한의 대응 등을 알아내기 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외교부는 28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제32차 30년 경과 비밀 해제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북한 측은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는 사실을 7월 9일 정오에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당시 외무차관을 중심으로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전 공관 비상근무 체제 돌입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9일 전군 비상 경계 태세를 지시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러시아는 타살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주중러시아 대사관 참사관은 김하중 주중한국대사관 공사에게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남북) 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촉진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게오르기 미토프 전 주한불가리아 대사대리도 "김일성이 자연사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각국 소재 북한대사관은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베트남의 한 언론사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튿날 관련 소식을 보도하자 주베트남 북한대사관은 '터무니없는 날조'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북한 관영 중앙통신의 기사가 나오자 진정됐다. 각국 북한대사관은 김일성 사망 후 분향소를 설치해 조문객을 받는 동시에 김일성의 조문을 강하게 요청했다고도 한다.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 미국 측은 주로 부정적인 관측을 내놨다. 당시 스탠리 로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반기문 주미대사관 공사에 "김정일은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정통성이 결여돼있다"며 "김정일이 핵 문제와 관련해 강경파라는 점에서 핵 개발 계획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월터 먼데일 주일미국대사는 "김정일은 약간 멍청하고 어린애 같아 지도자로 부족하다"고 혹평했다. 미 국무부는 김정일의 정책 행보에 대해서 "김일성 정책의 계속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평했다.
미국은 당시 북한에 완전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 전면 수용, 비핵화 공동 선언 등을 요구했다. 북한은 북미 관계 정상화, 경수로 지원,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불사용 보장 등을 조건으로 내밀었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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