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플루언서, 주부 등 개인 창업자는 물론이고 화장품과 무관한 업종의 기업들까지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면서 신생 브랜드가 급증하고 있다. K뷰티의 세계적 열풍을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인디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성공 신화’를 꿈꾸는 브랜드 간 치열한 경쟁 탓에 허위 광고, 표절 논란 등 각종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4년 화장품책임판매업체는 2만7361개로, K뷰티 열풍이 불기 전인 2015년(3840개)에 비해 일곱 배 이상 늘었다. 시장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 아이디어와 브랜드만 있다면 쉽게 창업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영향이다.2010년대 초만 해도 국내 화장품산업은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이 주도했다. 그러나 최근엔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을 통해 제품 생산이 가능해졌고, 온라인 판매 채널도 급격히 늘어나면서 중소 브랜드 창업이 급증하고 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평균 6개월이면 자체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인플루언서들이 창업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세로랩스’, 유튜버 박막례 씨의 ‘례례’ 등이 대표적이다. 의사, 약사 등 전문직은 물론이고 기존에 화장품과 무관하던 중소기업들도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전문가 매칭 플랫폼 ‘크몽’에는 “소자본, 무경험 1인 창업자에게 유익한 노하우를 전달한다”는 소개와 함께 현직 화장품업체 대표가 진행하는 200만원 상당의 강의 프로그램도 등록돼 있다.
매출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신규 브랜드가 늘면서 국내 책임판매업체의 총생산금액도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2019년 1만5707개였던 책임판매업체는 2023년 3만1524개로 두 배가량 늘었지만 같은 기간 총생산금액은 1조6263억원에서 1조4510억원으로 10.8% 줄었다. 생산 실적을 식약처에 보고한 업체 비율도 2016년 60.7%에서 매년 하락해 2023년 37.6%까지 떨어졌다. 비누 공방 운영 경험을 살려 2020년 화장품 회사를 창업한 주부 양모씨(42)는 “오이와 레몬 등 자연 성분을 활용한 화장품을 콘셉트로 내세웠지만 매출이 거의 나오지 않아 작년에 폐업했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식약처는 "책임판매업을 통해 중소 브랜드들이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열어주고 있다"며 "제조품질관리기준(GMP)를 국제표준과 조화되도록 해 수출시 부담을 줄여주는 등 중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융합대학원장은 “국내 화장품은 소수 제조업체에 의존해 내용물은 비슷하면서 포장과 마케팅만 다른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기술력과 R&D 중심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책임판매업체 간 치열한 경쟁은 화장품 제조업의 성장과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라면서도 “독창적인 콘셉트나 차별화된 기능이 없는 제품은 결국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유통기한이 지나 전량 폐기되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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