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 1, 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관계는 가전업계 삼성·LG, 유통업계 롯데·신세계와 비슷하다. 같은 시장을 놓고 싸우는 라이벌이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부딪친다. 2004년 현대제철(당시 INI스틸)이 포스코가 독점하던 고로 건설에 나섰을 때 포스코가 자동차 강판으로 쓰이는 열연제품 공급을 끊어버린 게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두 회사는 고강도 강판 성형 기술인 ‘핫스탬핑’ 특허 소송으로 맞붙는 등 여러 차례 충돌했다.포스코는 오래전부터 미국 제철소 건립을 놓고 고심해왔다. 10여 년 전 검토한 앨라배마 열연·냉연 공장 설립 프로젝트는 높은 인건비 등이 부담돼 접었고, 얼마 전까지 들여다본 미국 철강사 지분 투자 및 합작법인(JV) 설립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져 흐지부지됐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프로젝트가 터져 나오자 포스코는 ‘경쟁사에 선수를 빼앗겼다’는 반감을 갖기보다 새로운 기회로 봤다. 미국 시장 진출이란 해묵은 숙제를 우회적으로 해결할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제철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국내 건설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곳간’이 비어가는 상황에서 철강을 잘 아는 ‘큰손’을 우군으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22년 말 1조7000억원에서 작년 말 1조3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렇다고 ‘트럼프 관세폭탄’에 대비해 실탄을 마련해야 하는 현대차와 기아에 마냥 손을 벌릴 수도 없는 터. 미국 진출을 오랜 기간 준비한 데다 자금 사정도 넉넉한 포스코만 한 파트너가 없다는 얘기다. 포스코홀딩스의 작년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조7679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업계에선 국내 1, 2위 업체 간 협업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서로가 윈윈하는 거래인 데다 ‘트럼프 관세 리스크 해소’란 공통의 목표를 함께 풀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29년 가동에 들어가는 루이지애나 제철소가 ‘팀 코리아’ 체제로 운영되면 현대제철과 포스코 모두 관세 부담을 상당히 덜 수 있다. 현대제철은 그때쯤 미국에 120만 대 이상 생산체제를 갖추는 현대차와 기아에 자동차용 강판을 관세 부담 없이 공급하게 된다. 포스코도 현지 생산을 통해 주요 고객사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에 무관세로 납품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전쟁으로 시작된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1, 2위 기업이 힘을 합쳐 헤쳐 나가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번 지분 투자가 성사되면 향후 두 회사의 협업 분야가 미래 프로젝트 공동 연구개발(R&D)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 미래기술 등에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힘을 합치면 R&D 비용을 분담하고 실패 리스크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김형규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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