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민의 어프로치샷이 컵 앞에서 딱 멈추더라고. 들어갔으면 이글이었다니까.”
“이예원은 이글퍼트를 떨어뜨렸잖아. 하마터면 연장전이 될 뻔했어.”
지난 7일 부산 동래베네스트GC(18홀 회원제) 클럽하우스 라커룸. 나이 지긋한 회원들이 라운드를 준비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하루 전 끝난 KLPGA투어 국내 개막전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18번홀(파5)에서 홍정민(23)이 그린 밖 16m 거리에서 친 세 번째 샷이 홀 바로 앞에서 멈췄고, 이예원(22)의 8m 이글퍼트가 그대로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71년 동래CC로 문을 연 이후 부산·경남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동래베네스트에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생긴 것이다.동래베네스트는 18홀 전체가 분지 지형에 조성돼 있다. 마치 골프장 전체를 울창한 숲속에 집어넣은 모습이다. 동래베네스트는 이번 대회에서 페어웨이의 새파랗고 촘촘한 잔디로 출전 선수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사계절 푸른 잔디로 유명한 동래베네스트는 지난겨울 휴장 없이 운영한 국내 54개 골프장 중 하나다. 페어웨이에 토종 잔디 품종 중 하나인 ‘고려지’(금잔디의 일종)를 사용하는데, 2019년부터 한지형 잔디인 ‘라이그래스’를 덧파종하는 테스트를 통해 2022년부터 전 홀 페어웨이에 사계절 푸른 잔디가 가능해졌다.
대회 1번홀(파4)로 사용된 동래베네스트 10번홀 티잉 구역에 섰다. 대회 첫날 단 한 개의 버디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가장 어렵게 플레이된 홀이다. 티잉 구역이 높은 곳에 있고, 페어웨이 주변을 나무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어 페어웨이가 좁게 느껴지는 착시효과가 발생해서다. 대회 1라운드 때 평균 스코어는 4.44타.티샷이 운 좋게 페어웨이 한가운데 정확히 떨어졌다. 하지만 세컨드샷에서 뒤땅 실수가 나왔다. ‘백돌이’에게 17㎜로 짧게 깎인 페어웨이 잔디에서 우드샷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3온에 성공했으나 2퍼트 보기로 홀아웃했다. 첫 홀을 마친 뒤 크게 한숨을 쉬자 김도진 동래베네스트 지배인이 이렇게 말했다. “결과가 아쉬울 땐 한번 뒤를 돌아보세요. 우리 골프장은 티잉 구역보다 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아름다워서 플레이 도중 뒤를 돌아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싹 사라져요.”
동래베네스트는 18홀 중 3번홀(파3)을 제외한 17개 홀이 투 그린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두 개의 그린을 번갈아 사용하기 때문에 그린의 밀도가 촘촘해 평상시에도 3.2~3.4m의 빠른 그린 스피드를 자랑한다. 대회 땐 3.4~3.6m의 그린 스피드로 조성돼 선수들이 애를 먹었다. 특히 대부분 그린이 잔라이가 심해 확실히 계산하지 않으면 1퍼트 마무리가 쉽지 않다.
어느새 승부처인 마지막 9번홀(파5). 이예원이 대회 때 우승을 결정지은 18번홀이다. 블루티 기준 우 그린까지 전장은 522야드. 페어웨이 초반엔 왼쪽으로 휘어지다가 끝자락에선 오른쪽으로 꺾이는 좌우 도그레그 홀이다. 대회 땐 2온 공략이 가능하도록 화이트티를 더 당겨 전장을 464야드로 짧게 조성했다. 김 지배인은 “원래는 전장이 더 길고, 좌우로 도그레그가 심해 일반 회원들은 이글을 꿈도 못 꾼다”며 웃었다.
대회 티 기준으로 2온에 성공하려면 페어웨이 왼쪽으로 보이는 소나무 삼형제를 노려야 한다. 오른쪽으로 보내면 우 그린이 시야에 가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티샷을 바라는 대로 정확히 보냈다. 남은 거리는 이예원(210야드)보다 더 긴 220야드. 이예원은 ‘고구마’ 2번 하이브리드 클럽을 꺼냈지만, 턱도 없다는 걸 알기에 3번 우드를 꺼냈다. 온 힘을 다해 친 샷은 그린 앞 벙커에 떨어졌다. 두 번의 벙커샷으로 4온을 한 뒤, 마지막 홀까지 잔라이에 적응하지 못해 2퍼트로 마무리했다.
부산=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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