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작전
메모리 반도체,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스마트폰, TV….삼성전자가 10년 넘게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산업이다. 공통점이 있다. 대규모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한 뒤 남들보다 한 발 빠르게 생산·판매로 이어가는 ‘필승 공식’을 썼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삼성의 ‘성공 방정식’은 힘을 잃었다. 기술이 워낙 빨리 바뀌고, 고도화하면서 삼성 같은 종합 정보기술(IT) 기업조차 혼자 힘으로 모든 걸 다할 수 없게 돼서다. 외부 협력에 소극적이던 삼성전자가 미래 기술 난제를 풀기 위해 북미 명문 공대와 ‘기술 동맹’을 맺은 이유다.
◇ 660조원 미래 산업 정조준
22일 산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삼성전자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스탠퍼드대, 캘리포니아공과대, 토론토대 등 북미 지역 명문 공대와 동맹 수준의 협력 관계를 맺고 첨단 기술을 함께 개발하는 ‘START’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삼성전자가 연구개발(R&D)을 하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힌 기술적 난제를 공개하면, 공대 연구실이 해결책을 내는 식으로 매년 진행된다.올해 삼성전자가 낸 아이디어 공모 분야는 로봇, 디지털 헬스케어, 6세대(6G) 이동통신, 멀티모달 AI, 차세대 카메라 등 5개 분야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구글, 애플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이 모두 군침을 흘리는 유망 시장이다. 이들 5개 산업의 2030년 시장 규모는 4668억달러(약 66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적 난제도 많은 분야다. AI와 결합한 소프트웨어(SW)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영역이다. 하드웨어 중심으로 성장해온 삼성전자로서는 세계 최고 공학자들이 모여 있는 MIT, 스탠퍼드 등 명문대 연구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 삼성, 감정 가진 로봇 개발 추진
삼성전자는 북미 공대 연구실에 구체적으로 12개 과제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삼성전자가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은 로봇과 관련해선 ‘인간의 감정과 표정을 읽고 추론하고 움직일 수 있는 로봇 기술’ 개발을 주문했다. ‘로봇이 인간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선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 더 나아가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삼성전자는 과제 지시서에 적시했다.‘로봇과 사람의 접촉을 위한 공존 기술’도 과제로 제시했다. 예컨대 사람이 옷을 갈아입는 걸 도우려면 로봇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로봇이 아픈 사람을 부축할 때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해결책을 내달라는 주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렇게 확보한 기술을 현재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선 차세대 웨어러블 기기의 질병 진단 기능을 고도화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질병이나 심정지 등을 예측할 수 있도록 체온, 심박수, 호흡, 수면 등 활동 패턴의 변화를 감지하는 알고리즘 개발, 스마트 안경이 인간의 눈이나 호흡을 센싱한 뒤 질병을 감지하는 프로그램의 개발을 주문한 게 대표적이다.
◇ 멀티모달 AI로 빅테크와 경쟁
AI 분야에선 멀티모달 AI(문자, 영상, 오디오 등의 정보를 종합 처리하는 AI)를 자체적으로 출시하기 위한 기술 고도화 방안을 주문했다.삼성전자는 또 6G 저전력 핵심 장비 구현, 증강현실(AR) 기기용 저전력 카메라 센서 개발 등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파트너 대학을 선정하고 하반기부터 공동 연구개발(R&D)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테크의 산실’을 찾아 기술 동맹에 나선 데 대해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강조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수 공학 인재를 입도선매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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