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정진욱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헌재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단순히 68조 1항의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 삭제를 넘어 총 8개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헌재가 세금 관련 법률에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대법원이 이를 무시한 판결을 내리자, 헌재가 1997년 그 판결을 취소한 사건(96헌마172)을 계기로 시작된 두 기관의 권한 다툼이 이번에 다시 표면화된 것이다.
헌재는 대법원 판결뿐 아니라 상소 포기로 확정된 1·2심 판결까지 모두 헌법소원 대상으로 하고, 확정판결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가처분 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특히 75조(인용결정)에서 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인정될 경우 헌재가 해당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관할 법원으로 환송하도록 명시했다. 헌재법 개정안은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14일 전체회의에 상정된 상태다.
한 헌법학자는 “1987년 헌법은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정하고, 입법부 견제용으로 헌재를 만든 것”이라며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려면 독일처럼 헌재를 최고 사법기관으로 명시하는 개헌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 111조가 헌법소원 내용을 법률에 위임했지만, 재판소원 도입 시 헌법 101조와 충돌할 수 있다”면서도 “이론적으로는 중요한 쟁점이지만 헌재가 이에 대한 최종 해석권을 지녀 대법원은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다수의 헌법학자는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손인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헌법적 특수 쟁점만 심사하므로 4심제라는 주장은 오해며 다른 헌법조항과 충돌되는 부분이 없다”며 “오히려 재판소원 불인정 시 법원과 헌재가 각각 다른 헌법 해석을 내려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헌재가 지난해 처리한 사건은 2725건으로 이 중 98%가 헌법소원이다. 이에 비해 대법원이 지난해 처리한 사건은 5만 건에 달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소원 도입 시 헌재 사건이 10배 폭증할 것”이라며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 결정도 재판소원 대상이 돼 사건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 교수는 “독일은 재판소원이 전체 사건의 90% 이상으로 16명의 재판관을 8명씩 두 개 전원재판부로 운영한다”며 “우리 헌재는 전원재판부가 하나뿐인데 헌법 111조 등 개헌을 통해 전원재판부를 두 개로 늘리고 인력과 조직을 대폭 확충하지 않으면 헌재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판소원 제도는 형식적으로만 도입될 뿐 실제 국민의 권리구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독일 헌법재판소도 재판소원의 90% 이상이 각하될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건은 1년에 몇 건 안 될 텐데, 구제받기를 희망하는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란/장서우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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