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하버드대를 상대로 외국인 학생 등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소한 22일(현지시간). 익명을 원한 한국인 하버드대 유학생은 기자에게 “트럼프 행정부가 고등교육 통제를 위해 유학생을 장기판의 졸로 사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을 앞둔 한인 학생들은 충격과 함께 불안감에 휩싸인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상 밖 조치로 인해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계속 머무르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황정호 하버드대 한인학생회 회장(컴퓨터사이언스과·4학년)은 “소식을 접한 유학생 모두 굉장히 당황스러워하고 있다”며 “이미 취업했거나 취업을 앞둔 졸업생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체류 신분이 어떻게 유지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지금 당장 비행기표를 구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이러다가 미국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이며 불안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버드대는 2024∼2025학년도 학사 일정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다음주에 졸업식을 앞둔 상황이다. 방학이 시작되다 보니 현재 캠퍼스 기숙사에는 졸업 예정자 등 일부만 남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2023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가자전쟁 발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하버드대를 비롯한 미국 주요 대학가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여론이 커졌다. 유대계에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하버드 내 반유대주의와 DEI(다양성·포용성·형평성) 정책을 비난하며 하버드대를 압박해왔다. 하버드대의 입학 정책, 교수진 채용 등에 대한 정부의 감사권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하버드대는 ‘학문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26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연구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지난달 16일엔 하버드대에 외국인 학생의 범죄와 폭력 행위 이력 등을 요구하며 4월 30일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유학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인 ‘학생·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종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번에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취한 조치를 다른 대학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하버드대뿐 아니라 미국에 유학 중인 한인 학생 상당수가 불안해하는 분위기다. 미국 내 전체 한국인 유학생은 4만3000여 명으로 인도(약 33만 명) 중국(약 27만7000명)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김선민 다트머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대학이 세계 학문을 주도하게 된 것은 외국인 학자와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이런 조치로 학생은 물론 교수들도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번 조치와 관련해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진전 상황을 신속히 공유하는 등 필요한 정보와 영사 조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박신영/워싱턴=이상은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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