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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업계 1위 태림포장도 “이제 R&D 없인 생존 불가능”

입력 2025-05-26 14:01   수정 2025-05-26 19:00


지난 21일 경기 시흥시 공단1대로 태림포장 시화 사업장.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섭씨 37도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숨을 쉬기 힘들었다. 뜨거운 열을 내는 설비는 바로 콜게터. 태림페이퍼와 자회사인 동원페이퍼에서 제조돼 들어온 원지로 골판지 상자의 가공 전단계인 원단을 만드는 설비다.

표면지와 표면지 사이에 골심지(구불구불한 모양의 종이)와 이면지를 넣어 접합한 뒤 잘라내자 우리에게 익숙한 골판지가 만들어졌다. 이 곳에서 만들어진 원단은 가로 1m, 세로1m 규격 기준으로 하루 평균 100만장에 달한다. 정우철 태림포장 시화공장 공장장은 “월 평균 300개 기업에 납품하는데 원단을 직접 받는 기업과 종이상자로 가공한 완제품을 받는 기업이 50 대 50 비율”이라고 말했다.



원단 중 상당수는 다시 가공 제조 공정으로 들어갔다. 원단을 프레스로 눌러 종이박스의 날개 부분을 만든 뒤 겉면에 제품명을 인쇄해 포장하는 과정이다. 국내에서 가장 빠른 인쇄기로 겉면에 제품명을 찍은 종이박스가 분당 400매씩 쏟아져 나왔다. 평평하게 접혀진 종이박스가 20매씩 묶여 나오자 거대한 로봇 팔이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예전엔 적재 과정을 사람이 직접 했지만 이젠 100% 로봇이 진행하고 있어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는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실제로 시화공장 내 일부 인력이 투입되는 ‘반자동 공정’과 ‘완전 자동 공정’의 출하량은 각각 30만장와 70만장으로 2배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20년 태림포장을 인수한 글로벌세아그룹이 생산성과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골판지 원단 및 상자 설비를 확대·개선한 결과다.

1976년 설립된 태림포장은 농산물부터 식음료, 가전제품, 택배용까지 다양한 골판지 상자를 제조하는 포장업계 1위 기업이다. 최근 들어 신제품과 신소재 연구·개발(R&D)에 몰두하고 있다.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을 확보해 오랜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6801억원(별도)으로 전년(6781억원)보다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23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22년 이후 이어지는 내수 경기 악화에 골판지 원지 가격 인상 등 원재료비가 상승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진 게 주된 실적 하락 요인이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그나마 올해 들어선 실적 부진의 발목을 잡았던 원가 부담이 줄어들고 있지만 미미한 수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종이·골판지 등 원지 생산자 물가지수는 111.2(2020년 100 기준)로 지난해 12월(116.1) 대비 4.2% 떨어졌다.

1위부터 5위 간 엇비슷한 과점체제가 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는 점도 정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제지연합회에서 조사한 종이상자 생산량 점유율(2023년 기준)에서 태림포장은 22.2%로, 2위 아세아제지(20.2%), 3위 삼보판지(12.9%), 4위 신대양제지(12.2%) 등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업계 유일한 기술연구소와 디자인센터를 바탕으로 신소재와 혁신 디자인, 신제품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날 이곳에선 ‘고강도 경량 골판지 상자’에 대한 수직 압축 강도를 실험하고 있었다. 지난해 업계 최초로 개발해 출시한 이 상자는 골판지 소재인 원지 2장에 골심지 한 장을 넣어 접합한 원단(싱글 월)으로 만든 제품이다. 원지 3장과 그 사이에 2장의 골심지를 넣어 붙인 기존 이중 양면 원단(더블 월)으로 만든 상자보다 투입되는 종이 사용량이 20% 적다. 그 덕에 가격도 10%가량 낮아졌다.

실험 결과 싱글 월 상자의 압축 강도(BCT)는 507kgf(킬로그램힘)를 기록했다. 기존 더블 월 상자의 압축 강도(499kgf)보다 높은 수치다. 이 수치가 높다는 것은 같은 힘으로 상자를 눌러도 무너지지 않고 더 잘 견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결은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특수 강화 원지였다. 이 원지가 골판지 강도를 20% 더 높인 덕에 두께가 더 얇아졌음에도 원단의 압축강도는 비슷해진 것이다.



이 상자는 현재 국내 식품 기업인 오뚜기의 라면 박스를 비롯해 매일유업과 종이컵 제조사인 현진제업 등도 쓰고 있다. 장정원 태림 기술연구소 연구팀장은 “물류 효율성은 물론 종이 사용량을 낮춰 골판지 포장재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제품”이라며 “매출 비중은 5% 내외로 낮지만, 이 제품 덕에 ‘경량 상자는 약하다’는 고객사들 인식이 최근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봤던 ‘테코박스’도 국내외 스티로폼 포장재 시장을 겨냥한 대체재로 개발됐다. 이 제품은 원지 내부 표면을 물이 잘 스며들지 않고 온도도 유지해주는 특수 소재로 코팅해 만들었다. 테코박스에 냉장육을 보관하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21시간 동안 10도 이하(아이스팩 사용)를 기록하며 스티로폼(EPS) 상자의 98%에 가까운 보랭 시간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스티로폼 상자를 테코박스로 전환할 경우 창고 보관 면적을 최대 50% 줄일 수 있다.



스티로폼 상자 대신 테코박스를 사용할 경우 적재에서도 탁월한 경제성을 보여줬다는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술 연구소에서 같은 용량의 제품을 담을 수 있는 스티로폼 상자 5만개를 높이 4.5m 규모의 창고에 적재해 본 결과 500㎡(가로 50m, 세로 10m)의 면적이 필요했다.

스티로폼 상자보다 두께가 얇은 테코박스는 250㎡(가로 25m, 세로10m)의 면적으로도 똑같은 5만개를 보관할 수 있다. 테코박스로 전환할 경우 창고 보관 면적을 최대 50%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골판지 상자처럼 평평한 상태로 배송이 가능하고, 두께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정우철 태림포장 시화 공장 공장장은 “골판지 포장재 선도업체로서 정체되지 않고 더 성장하기 위해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등 대체 시장으로의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혁신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모두 친환경적이고 경제성이 뛰어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인 이커머스 업체들 사이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시흥=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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