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부부 인형을 들고 있는 블랙핑크 리사, 로제. /사진=라부부 인스타그램, 리사 인스타그램)
“재입고되는 날에는 마음의 준비를 해요. 주말에도 대기줄이 저 끝까지 섰어요.” 지난 5월 27일 팝마트 명동 프리미엄 테마숍에서 만난 직원은 이같이 말했다.
팝마트 앞 늘어선 줄은 첨단기술에 주력하던 중국이 이제 캐릭터 IP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팝마트는 중국의 캐릭터 IP 기업이다. ‘중국판 디즈니’, ‘중국판 산리오’라고 불리며 오랫동안 일본이 주도해 온 수집품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중 ‘라부부’는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 전 세계적으로 품절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라부부는 통상적인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뾰족뾰족한 이빨과 장난기 있는 미소를 지닌 털복숭이 괴물 인형으로 SNS만 봐도 ‘못생겼다’, ‘무섭다’와 ‘귀엽다’는 표현이 공존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라부부 이외에 팝마트의 다른 캐릭터들도 우는 표정, 튀어나온 입 등 개성 있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어 ‘못생긴 귀여움’은 팝마트의 특징처럼 자리 잡았다.
팝마트는 중국 내외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매출 130억4000만 위안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6.9% 증가했다.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중국 본토 매출이 79억70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52.3% 증가한데 비해 해외 매출은 50억7000만 위안으로 375.2% 급증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서는 900%, 유럽에서는 600% 증가했다.
주가는 2020년 12월 상장 이후 최고가를 달리고 있다. 주가는 최근 1년 동안 약 10배 급등했다. 5월 27일엔 홍콩증권거래소 상장기업 가운데 27번째로 시가총액 ‘3000억 홍콩달러(약 52조5000억원) 클럽’에 가입했다.
또 자체 캐릭터라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어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할 수 있다. 초기에는 피규어·키링·인형 등을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주얼리·게임·테마파크까지 다양하다.
외신들은 라부부 열풍의 결정적 계기로 블랙핑크 리사를 꼽았다. 리사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새로 나온 라부부를 게시하고 팬심을 드러내 동남아시아 매출을 견인했다. 지난해 팝마트 동남아시아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619% 증가한 24억 위안(3억900만 달러)을 돌파했다.
셀럽을 모방하러 온 소비자들은 랜덤 박스 전략에 발목이 묶였다. 팝마트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박스에 라부부 인형을 넣어 판매하고 있다. 랜덤 박스 전략으로 소비자들은 희소성이 큰 ‘시크릿 캐릭터’를 얻기 위해 재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팝마트는 높은 재구매율과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소비불황 속 오히려 랜덤 박스가 유리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시장조사기업 민텔의 조이 쿵 트렌드 매니저는 “청년들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고 있는 흐름 속에서 팝마트 장난감은 정서적 안정과 저렴한 사치품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랜덤 박스는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언박싱’ 영상 콘텐츠로도 제격이다. 틱톡에는 ‘해시태그 라부부’ 영상 콘텐츠가 140만 개에 이른다(5월 23일 기준). 라부부 언박싱 영상부터 팝마트 매장 밖 라부부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싸움영상까지 다양하다. 싸움영상마저도 라부부 인형의 인기를 홍보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그럼에도 라부부 인형은 미국에서 신제품 출시 때마다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시카고 미시간 애비뉴 팝마트에서는 라부부 신제품 출시 당일 새벽 1시부터 대기줄 행렬이 이어졌고 LA 웨스트필드 센추리 시티 쇼핑몰에서도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경찰이 출동한 바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유행 중이다. CNN에 따르면 5월 23일 영국 옥스퍼드 오프라인 매장에서 라부부 인형을 두고 난투극이 벌어져 결국 팝마트는 판매 중단 결정을 내렸다.
프린스턴대 앤 청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팝마트의 폭발적 성장은 헬로키티 때부터 ‘아시아의 귀여움 문화’에 열광해온 미국인들의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무역전쟁 속 미국산 제품에 대한 애국 마케팅과 코로나19 시기 고조된 반(反)아시아 정서에도 불구하고 라부부의 인기가 식지 않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짚었다.
청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차별적 고정관념에 시달리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문화 상품이 ‘작고 귀여운 패키지’로 포장되면 쉽게 소비되는 모순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미국 대중문화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라부부 키링과 랜덤 박스. /사진=팝마트)
지난 4월 25일 출시된 라부부 신제품은 미국 온라인 재판매 플랫폼 StockX에서 최대 90달러에 재판매됐다. 지난해 8월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서는 라부부 인형 재판매로 1만 달러(약 1400만원)를 번 미국 청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 내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중고거래 사이트 알리바바의 센위에선 라부부 가격이 평균 99위안에서 1310위안으로 올랐다. 지난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반스와 함께 출시한 정가 599위안짜리 한정판 제품은 현재 약 1만4800위안에 판매되고 있다.

(명동 팝마트에서 판매되는 라부부. /사진=조수아 인턴기자)
여전한 관세 논란은 팝마트 성장의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소비자들의 호응에 발맞춰 팝마트는 올해부터 미국 내 매장 확대를 계획하고 있어서다. 실제 팝마트는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으로 이익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라부부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베트남으로 생산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제시 쉬 도이치뱅크 애널리스트는 “고성장 기간 동안 공급망 관리 압박과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인해 마진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아 인턴기자 joshua@hankyung.com
관련뉴스








